이존립 ‘행복한 날’, 130×97㎝, 유화, 2024.
이존립 ‘행복한 날’, 130×97㎝, 유화, 2024.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아비규환의 무차별 살육과 파괴가 날마다 반복되니 감각이 둔해지고 있다. 종말일지언정 꽃은 핀다. 우울함일랑은 훌훌 털고 개화를 맞자.

세상에 꽃이 없어 흉흉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꽃은 피어야 한다. 아니 피기 마련이다. 산에도, 들에도, 집안에도, 화분에도, 그림에도 꽃은 만발할수록 좋다. “누군가 악의 길을 간다는 것은 더 많은 꽃을 품어보지 않아서다.” 꽃의 작가 이존립의 생각이다. 화면에 식재를 참 감각적으로 하는 정원사다. 그의 화면은 행복의 햇살이 가득한 낙원이다. ‘근심이 없다’는 상수시(Sanssouci) 궁전인들 이보다 더 생기와 서광으로 가득할까. 싱싱하고 눈부신 아우라가 실제 꽃을 능가할 수는 없어도 측량이 어려운 큰 몫을 한다. 아름답고도 선한 영혼이라는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가 숨 쉬는 곳이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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