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고민
요즘 제 몸무게에 대한 강박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살이 쪄도 스스로가 너무 못나 보이고, 그 생각 때문에 우울해지곤 합니다.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평소에 꾸미고 다니는 편도 아닌데, 체중이 조금만 늘어도 스스로를 더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게 되는 걸까요. 이 마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요?
A : 마음대로 안 풀린 일 있는지 돌아봐야… ‘임상적 강박장애’와 달라
▶▶ 솔루션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다”라는 문장 안에 이미 많은 게 들어 있습니다. 사실 당신은 살이 찌는 게 싫은 것이 아닙니다. 살이 쪘을 때 뭔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싫은 것입니다. 체중계 숫자가 올라갔을 때 흔들리는 것은 단지 외모에 대한 강박이 아닌 본질적인 무엇입니다.
체중은 숫자입니다. 그리고 숫자는 통제가 됩니다.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움직였는지, 내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 등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변수가 명확하고, 결과가 측정되고, 내가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지 않은 것과는 달리, 몸무게만큼은 ‘하면 된다’는 믿음이 유지되는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흔들릴 때 무너지는 것입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전치’라고 부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을 더 다루기 쉬운 대상으로 옮겨놓는 것입니다. 관계의 불확실함,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아무리 애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불안은 너무 거대하고 윤곽이 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자동 상징으로 우회합니다. 더 작고, 더 선명하고,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무언가로. 체중은 그 조건을 정확히 충족합니다.
당신이 쓴 ‘강박’이라는 단어, 임상적인 강박장애와는 다릅니다. 강박장애는 뇌의 특정 회로 문제로 불안의 대리 표현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해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체중이라는 대표선수를 세워 좀 더 선명해지고 설명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드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이 반응은 심리적 여유가 없을 때 강해집니다. 잠을 못 자거나, 관계에서 소진되거나, 뭔가 잘 안 풀린다는 감각이 쌓일 때 사람은 더 단순하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불안을 봉합하려 합니다. 체중을 조절하겠다는 결심이 유독 힘든 시기에 강해진다면, 그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무언가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살이 쪘다는 걸 알아챈 날, 자신에게 오늘 마음대로 안 된다는 느낌이 있었냐고 물어봐 주세요. 높은 확률로 있을 것입니다. 그 감각을 몸무게와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체중계 숫자의 힘이 조금씩 약해집니다. 몸무게는 당신의 불안을 담기엔 너무 작은 그릇입니다. 그 불안은 훨씬 더 넓은 곳에서 이야기돼야 합니다.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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