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 -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열
필리핀서 한국인 3명 살해 혐의
두번째 탈옥 후 본격적 마약사업
교도관 매수해 ‘호화 수감’ 논란
옥중에서도 대규모 카르텔 운영
매달 300억원 상당 국내로 유통
9년만에 국내 사법기관에 인도
경찰, 범죄수익 전액 환수 방침
필리핀 교도소 수감 중 텔레그램을 통해 국내 마약 밀수·유통을 진두지휘하며 일명 ‘텔레그램 마약왕’으로 불린 박왕열(48)이 지난달 25일 국내로 전격 송환돼 이틀 뒤인 27일 구속됐다. 2016년 필리핀 바콜로드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60년형을 선고받고 현지 복역 중이던 박왕열에 대해 9년 만에 국내 사법기관의 신병 확보가 이뤄진 것이다.
1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박왕열의 송환은 3월 초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에게 직접 그의 인도를 요청하며 성사됐다. 이 대통령은 당시 “한국인 3명을 살해하고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 중이면서도 계속 마약을 수출하고 교도소로 애인을 불러 논다는 박모 씨가 있다”며 박왕열을 거론했다. 박왕열이 국내 송환된 당일 이 대통령은 SNS에 “대한민국 국민을 해치는 자는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반드시 잡는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사업가로 출발한 박왕열이 마약왕으로 거듭난 배경에는 살인사건 이전부터 시작된 뒤틀린 범죄 궤적이 있다. 수산물유통업체 ‘유벤타스’를 운영하며 방송에도 출연할 만큼 건실한 사업가로 보였던 박왕열은 2010년을 전후해 발생한 약 1조 원대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인 ‘IDS홀딩스’의 모집책으로 활동했다. 1만 명 넘는 피해자들로부터 1조 원 이상을 가로챈 초대형 범죄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그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2010년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이후 현지에서 카지노와 사설도박장 운영에 손을 댔다. 특히 박왕열은 필리핀 클라크 지역을 거점으로 이른바 ‘정킷방’(카지노업체에 돈을 내고 빌린 전용 영업장)을 운영하며 한국인 도박꾼들을 상대로 불법 환전과 고리대금업을 병행했다.
박왕열은 2016년 발생한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국내에서 150억 원대 투자 사기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피한 한국인 남녀 3명이 박왕열의 타깃이 됐다. 박왕열은 이들에게 안전한 은신처를 제공하겠다며 접근해 클라크 인근 빌라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카지노 사업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속여 약 7억 원의 투자금을 가로챘다. 나머지 도피자금까지 탐낸 박왕열은 결국 공범과 함께 이들을 납치했다. 그는 피해자들을 총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사탕수수밭에 유기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훗날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카지노’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현지 한인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박왕열은 현지 경찰에 체포된 이후 두 차례 탈옥에 성공했다. 2017년 3월 외국인 이민자 수용소의 천장을 뚫고 탈옥했으며, 2019년에는 재판을 위해 이동하던 중 호송차량에서 다시 탈주하는 기행을 보였다. 특히 그는 두 번째 도주 기간 중 텔레그램 아이디 ‘전세계’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 2020년 세 번째로 검거돼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수감됐으나 교도관들을 매수해 ‘호화 수감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교도소 내에 에어컨과 가전제품을 완비한 개별 공간을 마련했으며, 외부에서 애인을 불러 파티를 여는 등 사실상 자유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이 같은 수감 환경은 그가 휴대전화로 국내 조직원들에게 실시간으로 마약 투하 장소를 지정하고 가상자산을 통해 자금을 세탁하는 등 옥중에서 대규모 마약 카르텔을 운영하는 토대가 됐다. 수사당국은 박왕열이 유통시킨 마약이 매달 약 60㎏(시가 300억 원 상당)에 달하며, 동남아시아에서 국내로 유입된 마약의 상당 부분이 그를 거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박왕열을 상대로 국내 마약유통 조직의 실체와 미회수된 범죄수익의 행방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이미 구속된 42명을 포함해 박왕열과 연루된 230여 명 규모의 유통조직 실체를 규명하는 한편 해외 차명계좌와 가상자산 등으로 은닉된 범죄수익을 추적해 모두 환수한다는 방침이다. 박왕열 송환 직후 실시한 간이 시약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옴에 따라 수사당국은 교도소 내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경 수사가 끝나면 박왕열은 국내 법원에서 마약 유통·투약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된다. 다만 이번 송환은 국내 형사절차 진행을 위해 필리핀 내 형집행을 일시 중단한 ‘임시인도’ 방식인 만큼 재판이 종료되면 그는 다시 필리핀으로 이송돼 남은 60년 형기를 채워야 한다. 법무부는 재판 결과에 따라 국내 선고 형량을 필리핀 형기에 합산하거나 향후 추가 사법공조를 통해 국내 교정시설에서의 수감 가능성 등 최종적인 신병처리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노민수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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