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기의 K스트리트 - 워싱턴DC ‘청소년 통행금지’ 단속현장

 

SNS 통해 모여 시민 탈취·폭행

200명 패싸움·일부는 총 쏘기도

 

4개구역에 오후 11시 이후 통금

경찰차 수십대 동원해 거리 순찰

 

팔로어 늘리려 ‘난동 영상’ 게재

“처벌 가볍다” 인식도 범행 부추겨

지난 3월 21일 오후 9시쯤 워싱턴DC 네이비야드의 한 공터에서 강화된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 조치에 따라 경찰들이 청소년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폴리스라인을 치고 단속하고 있다.
지난 3월 21일 오후 9시쯤 워싱턴DC 네이비야드의 한 공터에서 강화된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 조치에 따라 경찰들이 청소년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폴리스라인을 치고 단속하고 있다.

워싱턴=글·사진 민병기 특파원

지난 3월 21일 오후 9시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 워싱턴 내셔널스 홈구장인 내셔널스 파크 인근 ‘네이비야드’에는 경찰차만 20여 대가 집결해 있었다.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경찰은 인근 거리를 순찰했다. 전날부터 강화된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Juvenile Curfew Zones) 단속에 나선 것이다. 워싱턴DC에선 오후 11시부터 만 17세 이하 청소년 9인 이상이 집단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하는 통행금지 조치가 실행되고 있다.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네이비야드와 차이나타운, 야간 유동인구가 많은 U스트리트, 더 워프(The Wharf) 등 네 곳에 대해선 오후 8시부터 강화된 통행금지 조치를 실시했다. 불과 일주일 전 네이비야드의 공터에 청소년 200여 명이 모여 ‘틴 테이크오버(Teen Takeover)’를 진행했고, 이 와중에 15세 소년은 총기 발사 혐의, 16세 소년은 무면허 총기 소지 혐의로 체포됐기 때문이다. 네이비야드 공터에 모인 청소년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길을 가던 시민이나 다른 청소년을 때리거나 신발, 재킷 등을 빼앗기도 했다. 틴 테이크오버는 최근 몇 년 새 미국 대도시에서 나타난 새롭고 위협적인 현상이다. 10대 청소년(Teen)들이 SNS를 통해 특정 장소에 집결, 해당 지역의 점유권을 사실상 탈취(Takeover)하는 행동이다.

21일 오후 9시부터 한 시간가량 차량과 도보를 통해 인근 지역을 둘러본 결과 경찰의 순찰, 그리고 이를 피하는 청소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네이비야드 지하철역 앞에 경찰 수십 명이 있었지만 1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청소년 10여 명이 모여있었다. 이들이 모인 장소는 바로 한 주 전 틴 테이크오버 집결지였다. 이 지역 치안 자체는 나쁜 편이 아니다. 야구장 인근에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고, 호텔도 많아 DC 관광을 마친 이들이 도보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말마다 청소년들이 모여 틴 테이크오버를 벌였고, DC 시 의회는 강화된 통행금지 조치를 실시하게 됐다. 이날 경찰들은 선제적인 단속을 통해 일부 청소년들을 해산시켰고, 한 주 전과 같은 폭력 사태나 집단 체포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틴 테이크오버는 미국 전역에서 각종 사고를 만들어내고 있다. 시카고나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등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은 곳으로 여겨졌던 지역에서 시작된 틴 테이크오버는 주거단지와 관광지인 워싱턴DC 네이비야드 지역으로까지 확대됐다. 3월 18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는 200여 명의 청소년이 사이프레스 공원에 모여 패싸움을 벌였고 경찰을 피해 흩어진 무리 중 일부는 인근 아파트 단지로 이동해 총을 쏘기도 했다.

이 같은 틴 테이크오버는 디지털 기술과 사회적 결핍이 결합된 복합적인 현상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과 경찰들은 SNS의 ‘게임화’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틱톡(TikTok), 스냅챗(Snapchat), 인스타그램 등에서 자극적인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고, 특히 수백 명이 난동을 부리는 영상을 올리면 하룻밤 새 수만 명의 팔로어가 증가하는 등 ‘관심이 곧 권력’이 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0∼2022년 학교 폐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타인과 공감하고 공동체의 규칙을 배우는 과정을 건너뛴 ‘팬데믹 세대’를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지난해 브루킹스연구소는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2년 동안 청소년들이 범죄 조직이나 SNS상의 유해한 커뮤니티에 동화되는 속도가 팬데믹 이전보다 3.5배가량 빨라졌다는 통계를 내놨다. 이들이 주로 화려한 쇼핑몰이나 번화가 인근에서 틴 테이크오버를 진행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심리와 함께 체포돼도 강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시카고경찰청(CPD)이 틴 테이크오버 주동자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이들은 SNS에서 ‘경찰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거나 ‘미성년자라 처벌이 가볍다’는 정보를 조직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실제 2025년 워싱턴DC 사법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강력 범죄로 체포된 청소년 중 82%가 사건 발생 72시간 내 석방됐다.

틴 테이크오버와 맞물려 청소년 범죄의 건수는 줄었지만 강력 범죄는 늘고 있다. 법무부(DOJ)와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전체 체포 건수는 약 20년 전에 비해 70% 이상 줄었다. 단순 절도나 가출, 무단결석 같은 경범죄는 꾸준히 주는 추세다. 반면 청소년들의 살인사건은 전국적으로 30∼40%가량 늘었다. 총기 관련 범죄 역시 최근 3∼4년간이 20년 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총기의 경우, ‘고스트 건(Ghost Gun·일련번호 없는 조립식 총기)’의 확산으로 청소년들이 총기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워싱턴DC 외에도 주요 도시와 치안당국은 이 같은 틴 테이크오버와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볼티모어와 필라델피아는 기존 청소년 통행금지 조치 시간을 앞당겼고, 시카고는 밀레니엄파크 등 주요 명소에 청소년 단독 입장을 막고 주말에는 통행금지 조치를 실시했다. 시카고는 자녀가 틴 테이크오버에 참여해 범죄를 저지를 경우, 부모에게 최대 1000달러의 벌금과 사회봉사, 강제 부모 교육 상담을 받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병기 특파원
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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