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왔을 때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는 학생들이 투쟁 노선을 놓고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때 박 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제적과 복학을 반복했던 정치학과 복학생 김부겸이 연단에 올랐다. 1만여 명의 학생이 모인 집회장은 그의 열정적인 연설로 한순간 정리가 됐다. 이후 김부겸은 아크로폴리스의 전설로 남아 있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온 김 전 총리는 서점, 복사집 등을 하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운이 없어서인지 계속 낙선을 하다 200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 군포에서 당선됐다가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후에도 두 차례나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군포에서 3선을 한 그는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돌연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군포에서 4선을 하는 건 월급쟁이 하겠다는 것이다. 고향으로 내려가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고 밝혔다.

대구에서 민주당 이름으로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상황에 19대 총선과 이어진 제6회 대구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두 선거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올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 다시 도전한 그는 ‘벽치기 유세’라는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담벼락에 대고 혼자 독백하는 유세인데, 대화하듯 10분 동안 말을 하고 자리를 뜨는 방식이다.

하루에 50군데씩 옮겨 다니며 유세를 했는데, 처음엔 아무도 내다보지 않다가 시간이 갈수록 한두 명씩 베란다 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는 등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투표 전날에 열린 마지막 유세 때는 그동안 귀로만 듣던 유권자들이 대거 현장에 나와 박수를 보냈다. 당시 김문수 후보와 맞붙은 김 전 총리는 62.3%라는 놀라운 득표율로 당선됐다. 사실상 정계 은퇴를 했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구시장 선거에 나선 김 전 총리가 예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국민의힘이 워낙 무기력하고 여론이 좋지 않다 보니 한번 해볼 만하다는 평가도 있다. 출마 선언에서 자신의 당선이 ‘보수 재건’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도 ‘신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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