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용 ‘4·3소설 눈(目)’ 저자, 전 대북감청정보사령관
내일이면 제주4·3사건 78주년이 된다.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4·3 유족과의 오찬 때 “국가폭력에 대한 형사상 공소시효, 민사상 소멸시효를 완전히 폐지해 살아 있는 한 끝까지 형사책임을 지고, 상속 재산이 있는 한 자손들까지 그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소멸시효 폐지 법률은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재입법해 나치전범 처벌과 같이 영구적으로 책임지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또, “4·3희생자와 유족에게 상처를 안겨준 4·3사건 진압 공로 서훈에 대해서도 취소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제주4·3사건은 해방 직후인 1948년 단선·단정(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반대를 주장하며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우익 인사를 학살한 김달삼과 이덕구의 공산 무장대에 대한 진압작전이었다.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한 사정으로 발생한 무고한 양민 희생자에게는 국가폭력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나치의 600만 유대인 학살과 같은 성질의 만행은 아니었다.
당시 군경만이 무고한 도민을 학살한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공산 무장대에 의한 군경과 주민 희생자는 1850여 명이나 된다. 무장대는 1948년 11월 28일 새벽에 제주 남원면 남원리 등 3개 리를 습격해 가옥 250채를 불태우고 주민 89명을 살해했으며, 부상자도 70명이나 됐다. 구좌면 세화리에서는 그해 12월 3일 밤에 무장대가 습격해 가옥 150채를 불태우고 주민 48명을 살해했으며, 표선면 성읍리에서는 1949년 1월 13일 대낮에 습격해 가옥 116채를 불태우고 주민 46명을 살해했다.
군경은 선량한 도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948년 박진경 대령은 재임 43일 동안 반란 무장대를 진압하면서 불순분자 22명을 처형하고, 검거한 5000여 명 중 500여 명을 감금한 것이 전부다. 그러나 김달삼은 거의 같은 기간에 경찰과 도민 320여 명을 처형했으며, 양민 수천 명을 입산시켰다. 그는 8월 황해도 해주 연설에서 경찰 100명과 우익 인사 400명 등 총 500명을 처형했다고 자랑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군경의 진압작전 당위성을 말해준다.
송요찬 9연대장과 함병선 2연대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진압작전을 편 군지휘관이었다. 누구나 공과가 있게 마련이다. 설령 4·3사건 진압 중 다소 실책을 범했을지라도 군 초창기 영웅적 활동을 했던 참군인이었다.
송요찬 (3성) 장군은 6·25전쟁 때 수도사단장으로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또, 4·19혁명 때는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계엄사령관이 돼 국민을 향한 발포금지 명령을 내렸으며, 학생들을 탱크 위에 태우고 4·19혁명을 도왔다. 함병선 연대장(3성 장군)은 휘하 1대대장 출신인 임부택 중령(2성 장군)과 함께 6·25 때 6사단 2연대·7연대장으로서 춘천·홍천 방어 임무를 잘 수행해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의 남하를 3일간 꽁꽁 묶어놨던 6·25 전쟁영웅이다. 그 결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한강전선을 시찰하고 주일미군을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애국 전쟁영웅을 국가폭력자로 몰아 단죄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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