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전 서울대 교수
미국 흑인의 역사 담긴 박물관
부끄러운 과거도 그대로 전시
카페서 우연히 마주친 군인은
전쟁·평화의 의미 떠오르게 해
독립선언 원본 간직한 기록관
역사 문헌 보는 것 자체가 감동
지난 3월 중순, 새 책 ‘문자 전파담’ 집필을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짧은 여행에 나섰다. 미국 북동부 로드아일랜드의 겨울은 매우 춥고 눈도 많이 왔다. 그렇다고 장거리 비행은 내키지 않아 초봄의 워싱턴 DC로 향했다. 자주 다녀오긴 했는데, 온전히 여행으로만 간 것은 거의 10년 만이었다. 미국의 행정수도이자 계획도시인 이 워싱턴 DC는 경관이 좋고 녹지가 많아 전원도시 같은 분위기다. 도착한 날은 온도가 갑자기 28도까지 오르고 햇살도 강해서 마치 한여름 같았다. 오랜 시간 산책을 즐겼다. 도시 곳곳에 목련꽃과 수선화가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첫날부터 감동적이었다.
다음 날은 2016년 단독 건물로 개관한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및 문화 박물관’을 들렀다. 개관 소식은 진작에 들었지만, 직접 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개관할 때부터 가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갈 수 있었다. 스미스소니언 산하 21개 박물관 중 하나로, 미국 흑인 역사와 문화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미국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루기 어렵고 부끄러운 역사를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흑인 역사를 마주하게 될 때면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미세스 존슨이 꼭 떠오른다. 미세스 존슨은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으로 태어나 ‘짐크로 법’이라는 법적 인종차별 사회 구조 속에서 자랐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시절에 흑인과 백인은 공적 시설을 따로 사용해야 했다. 남북전쟁 당시 연방에서 이탈한 남부 주에서는 이게 합법이었다. 이런 법의 원칙과 명분은 ‘분리 평등 정책’이었지만, 실제로는 평등하지 못했다. 버스에서 흑인의 좌석은 늘 뒷자리였고, 공공 화장실을 따로 써야 했다.
전시실 끝에는 20세기 중반에 유행했던 카운터 식당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서 멀티미디어 설명을 보는 형식이었는데, 보는 전시라기보다 생각하는 전시에 가까웠다. 거기에 앉아 민권운동의 활동상을 보고 있자니, 역시 젊은 시절 미세스 존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느 날 그는 카운터의 백인 자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아이스크림 위에는 케첩과 겨자가 잔뜩 뿌려져 있었다. 그는 그걸 그대로 먹고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고 했다. 그 밖에도 그는 흑인들이 해왔던 수많은 민권운동의 사례를 학생인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이러한 뜻을 품고 하는 활동은 가벼운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 위험하다는 것을 그 무렵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릴 때 접한 선생님의 가르침은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역시 감동적인 하루였다.
그다음 날 향한 곳은 의회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나와 의사당 뒤편으로 이어진 주택가 캐피틀힐 동네를 걷다가 잠깐 쉬기 위해 인기가 많다는 카페로 들어갔다. 자리가 많지 않아 카운터에 자리를 잡은 군인 옆에 앉았다. 앉기 전에 인사를 건네며 빈자리인 걸 확인한 뒤 구글 만점에 가까운 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그 군인은 곧 자리를 떴다. 짧은 대화 속에서 그가 군대 상사에게 말하듯 문장 끝에 ‘서’(sir)를 붙이는 것이 신기했다. 말투에 비해 얼굴과 눈빛이 무척 젊어 보였다. 예전에는 젊다 싶은 사람을 만나면 내 나이의 절반 정도였는데, 인근 막사의 해병대 소속 같은 그 젊은 군인은 내 나이의 3분의 1 정도로 보였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동네를 조금 더 걷다가 지하철을 타고 호텔에 돌아왔다. 내내 그 젊은 군인의 얼굴이 생각났다. 오래전 한국에서 열린 내 책 출판 기념 북토크에서 만난 젊은 군인 생각도 났다. 어머니와 함께 온 그는 북토크가 끝난 뒤 내 책에 사인을 받아갔다. 새 책을 낼 때마다 북토크를 하는데, 젊은 군인이 참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수많은 참석자 중에 젊은 군인을 기억하는 것은, 캐피틀힐 카페에서 만난 그 군인을 자꾸 생각하는 것은 왜일까….
전쟁이 터지면 그 젊은 나이에 죽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이자, 그 자체로 귀한 생명이다. 워싱턴을 걸으며 미국 역사에서 주요한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와 조형물을 자주 만났다. 베트남전쟁 전몰자 위령비 같은 유명한 것부터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장군의 동상도 마주했다. 전쟁이라는 행위로 인해 목숨을 잃은 젊은 군인들을 떠올렸다. 평화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했고, 지금 한창 치르고 있는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생각했다.
마지막 날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들른 곳은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었다. ‘미국 헌법’ ‘독립선언’, 그리고 ‘권리장전’의 원본을 처음으로 봤다. 18세기 문헌인 데다 보존을 위해 조명을 어둡게 해 두어서 거의 읽을 수는 없었지만, 헌법의 첫 문구인 ‘우리 합중국의 국민’(We the people)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전시실 건축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엄숙했지만, 고등학생이 많아서인지 분위기가 밝았다. 그들과 함께한 공간에서 역사적 문헌을 집중해서 보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미세스 존슨과의 추억,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의 평화의 소중함, 미국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미래세대의 밝은 눈빛. 이 모든 감동의 순간은 초봄의 워싱턴이 내게 선물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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