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은 1964년 인류 최초의 예술용 로봇 K456을 만들었다. 일본 엔지니어 슈야 아베와 함께 제작해 그해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선보인 K456은 거리로 나가 두 팔을 흔들며 사람들 사이를 활보해 탄성을 자아냈다. 입에 부착된 라디오 스피커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재생했고 배변하듯 커피콩을 배출했다. 로봇과 자동화가 효율적이고 깨끗하다는 당시의 과도한 경외심에 대한 예술적 비틀기였다. 이어 1982년 뉴욕 거리에서 K456이 차에 치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21세기 최초의 참사’라 이름을 붙였다. 기계는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는 신뢰에 대한 경고였다.

이 메시지는 인공지능(AI)이 일상으로 들어와 슬그머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AI 만능론’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어느새 AI 면접, AI 출제, AI 채점이 더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믿고, AI 알고리즘이 자신의 취향과 선택을 결정해 정체성까지 대신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졌다.

그의 서거 20주기를 맞아 올 한 해 백남준 전시와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K456의 특별 퍼포먼스가 벌어졌고, 국내 미공개 작품들을 선보이는 ‘백남준:되감기/되풀이(Rewind/Repeat)’전이 5월 16일까지 열린다.

‘되감기/되풀이’는 백남준의 시간 철학을 상징한다. 그는 인생엔 되감기 버튼이 없지만 비디오 아트, 예술은 과거를 되감아 현재로 다시 불러오고, 그것을 재해석해 새로운 의미를 반복해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기술 철학은 ‘K456’이 던지는 통찰처럼 AI 시대 우리에게 현실적인 메시지를 안긴다.

1970년대 이미 인터넷, 스마트폰, 라이브 스트리밍, 소셜미디어를 예견한 그는 기술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기계와 인간은 친구라며 ‘기술의 인간화’를 주장했다. 이는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고 인간이 서로 더 가까워지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백남준:되감기/되풀이’ 전시에 맞춰 방한한 백남준의 장조카 하쿠다 겐(75)은 “삼촌은 기술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내다보며 기술을 인간화하고 싶어 했다. 오늘날까지 살아 계셨다면 AI에 인간의 마음을 입히는 데 집중했을 것”이라고 했다. AI 시대 기술의 자리에 대한 정확한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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