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어제는 청명 오늘은 한식. 나에게 이번 주는 ‘나무 주간’이다. 일요일(4월 5일)에 어린나무(식목일)로 시작해서 토요일(4월 11일)에 가시나무(시인과 촌장)로 끝나기 때문이다.
예능PD는 초대권 받아서 음악회 가냐고 누가 묻던데 진짜 가고 싶은 콘서트는 정정당당하게(?) 표를 사서(요즘 쓰는 말로 ‘내돈내산’) 입장한다. 하덕규와 함춘호의 45주년 공연은 글자 그대로 팬심(설레는 마음)으로 예매했다. 얼마나 늙었나, 목소리는 제대로 내려나 시찰하러 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사이 나는 얼마나 변했나, 그때 그 순수함과 간절함이 살아나려나 성찰(부흥회 가는 마음)하고픈 게 중요한 이유다.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항해가 됩니다’ 포스터의 부제를 읽다가 BTS의 ‘스윔(Swim)’이 잠깐 떠올랐다. 하 씨와 함 씨 둘 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아리랑)보다 ‘나를 데리고 가시는 님’이 멀찌감치 보일 위치가 됐어도 ‘다시’라는 부사는 원망, 선망보다 소망, 희망을 품게 만든다.
‘배철수의 음악캠프’(3월 27일 방송)에 출연한 두 사람의 근황과 노래를 들으니 그간의 궁금증이 거지반 해소된다. 음악적으로 갈라선 것도 아니고 둘 사이가 틀어진 건 더더욱 아니었다. 각자의 길(교수, 목회자 vs 연주자)을 꾸준히(즐겁게+열심히) 걸어왔고 황혼의 교차로에서 다시 만난 거다. 최근 하 씨는 대학에서 정년퇴직했다. (그 심정 누구보다 잘 안다) 정년퇴직은 인생 학교에서 정학이나 퇴학당한 게 아니다. 졸업장 받았으니 더 공부하든지 현장에 뛰어들든지 하라는 명령이다. 농사에 빗대면 정년퇴직은 추수감사절 비슷한 거라고 나는 간주한다. 넓은 들에 익은 곡식이 황금물결 이뤘다고 이듬해 농사 접는 농부가 몇이나 되나.
시인과 촌장의 노래들(‘한계령’ ‘가시나무’)은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문학적으로 인정받았다. 수능(순응?)에 대비해 교실(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그 노래(움직이는 시)들을 갈기갈기 분해한다면 그건 서둘러 분개할 일이다. 주어가 뭐고 목적어가 뭔지보다는 나(주어)의 꿈(목적)이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가시나무’) 힘겹게 오른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한계령’) 떠미는 까닭에 대해 스스로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마땅치 아니한가.
명함을 남긴 사람보다는 명곡을 남긴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건물을 가진 사람보다는 건물에 새겨진 인물의 명언이 오래 남는 것과 비슷하다. 광화문 글판에 붙었던 하 씨의 노랫말들은 이 시대의 잠언이라 불러도 무방할 성싶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풍경’)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숲’)
‘시인과 촌장’은 서영은의 소설 제목에서 따왔다. 누가 시인(하덕규)이고 촌장(함춘호)인지는 알겠는데 시인의 정체에 관해선 왈가왈부가 있었다. 시를 쓰는 사람인가, 시에 사는 사람인가. 음악캠프에서 이번에 분명히 밝혔다. “시인(詩人)의 무게감을 덜어내고자 시인(市人)이라고 표기한 거죠.” 겸손이 묻어나는 고백에서 시민의 향기가 우러났다.
선거를 앞두고 거리엔 벌써 자신의 이력을 칭칭 두른 사람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자유보다는 자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고 외치며(뭐가 들었을까) 상대를 향해선 가시 돋친 말도 서슴지 않는다. 다가가서 한 마디 건네고 싶지만 결국 질문은 내게로 향한다. ‘이제 가시나무 대신 사과나무를 심는 건 어떨까.’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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