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미국과 이란 전쟁이 톨레도 전쟁의 데칼코마니가 되고 있다. 1835년 미국의 오하이오주와 미시간주는 이리호 주변의 톨레도를 차지하기 위해 주 민병대까지 동원해 으르렁거렸다. 지도상 경계가 불분명했던 폭 10㎞의 이 항구도시는 이리 운하와 연결된 노른자위 땅이었다. 결국,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힘이 셌던 오하이오주에 톨레도를 안겨주고, 미시간주에는 슈페리어호 부근 쓸모없는 늪지였던 어퍼 페닌슐라를 넘겼다.

전쟁의 승패는 얼마나 적을 많이 죽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치·경제적 최종 목표를 달성하느냐에 달렸다. 불과 5년 뒤 황무지 어퍼 페닌슐라에서 발견된 역대급 구리와 철광석은 미시간주의 운명을 통째로 바꿨다. 이란도 군사력 측면에선 미국의 압도적 무력에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비대칭적 전술로 세계 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다. 척당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뜯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사실상 이란이 이긴다. 전술적 패배를 딛고 전략적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인 로버트 케이건은 2018년 ‘정글의 귀환’에서 미래의 지정학적 공백을 예견했다. 그는 냉전 이후 당연시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자연적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역사의 ‘예외적 순간’이라 보았다. 미국이 막대한 피를 뿌려가며 다듬어온 인위적인 온실이라는 것. 이 온실 유리창이 깨지면 억눌렸던 폭력과 탐욕이 폭발해 전 세계가 야만적 정글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이건은 인간 본성에는 여전히 부족주의와 강권 통치에 대한 유혹이 잠재해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더 이란을 강력히 타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르무즈 해협 개방은 유럽과 한·중·일이 알아서 하라”며 손을 놓을 태세다. 이대로 가면 국제해양법의 국제 해협 통과통항권, 타국 영해의 무해통항권이 모두 휴지가 될 위기다. ‘자유무역’이 사라지고 냉혹한 ‘에너지 무기화’가 현실이 됐다. 민주주의는 위기를 겪고 권위주의가 판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란 전쟁으로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각자도생과 적자생존의 정글이 펼쳐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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