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목 전 주이란 대사, 전 코이카 이사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에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차단과 걸프 지역 국가들에 대한 인프라 공격을 일종의 인질로 삼아, 전 세계적인 유가 폭등을 유도하면서 미국의 공세에 대응해 왔다.

현재 국제 유가는 전쟁 발발 이전 수준에 비해 100%가량 올랐다. 나라마다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고물가가 엄습하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우려가 덮쳐 오는 게 현실이다. 지난 3월 말을 기준으로 걸프만에는 우리나라 선박이 26척가량, 전 세계적으로는 2000척가량의 선박이 갇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에너지 안보 문제는 치명적이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는 단연 세계 최상이다. 이 항로를 이용한 에너지 총수입 순위만 봐도 중국·인도·일본에 이어 세계 4대 이용국이다. 석유화학을 산업의 중추 중 하나로 자랑해온 우리나라에는 큰 위기이다. 에너지 공급이 아예 제대로 안 되고 있어 상당수 제조업이 존립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군사력으로 개방하기 위해 주요 소비국과 유럽 동맹국들에 함대를 보내라고 했다. 그러나 즉각 호응한 나라는 아직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對)이란 전쟁은 인기가 없다. 이란의 핵농축 프로그램을 제거하겠다는 이 전쟁에 유럽의 많은 나라가 동의하지 않고 있다.

기대와 달리 냉담한 우방들에 미국은 속이 탄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일의 특별담화 등을 포함해 수차례에 걸쳐 호르무즈 해협 개방 문제는 실제로 이 해협을 통해 에너지를 수송하는 나라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지난 2일 나토(NATO), 걸프만, 아시아 주요국이 참여하는 ‘호르무즈 자유 통항’을 위한 외교장관 화상회의를 개최했고, 우리 정부도 외교부 차관보를 대표로 이 회의에 참여했다. 현재까지 이 회의에서는 국제법상 확립된 ‘국제 해협 항행 자유의 원칙’을 확인하는 원론적 내용 외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던 건 아닌 듯하다. 반면, 이란은 호르무즈 통항 절차(protocol)를 만들어 해협을 영구히 통제하려고 한다. 미·이스라엘과의 휴전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미동맹이 평화 유지에 근간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상황은 한국으로선 참으로 곤혹스럽다. 우리는 에너지의 원활한 확보는 물론, 적정 수준에서 동맹으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 걸프만 주요 산유국들과의 관계나 이란 같은 자원 대국과의 관계는 우리의 중차대한 국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이다. 그러니 항로(航路)는 우리의 생명선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는 의무적인 것이고, 국제법적인 명분과 기준을 제공한다. 지난 3월 12일 바레인 주도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2817호는 이란의 걸프 국가들에 대한 무력 공격 금지와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원칙을 확인했다. 현재 이보다 더 강제성이 있는 결의안이 추가로 추진되고 있다. 어렵지만 잘 헤쳐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참고하고, 해군력을 주요 무역 항로에 배치하는 문제를 포함해 영국이 주최하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 관련 외교회의 등을 활용한 다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김영목 전 주이란 대사, 전 코이카 이사장
김영목 전 주이란 대사, 전 코이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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