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한국정치학회 회장
선거철만 되면 균형발전 등장
수도권 더 팽창, 지방 더 침체
산업기반 붕괴에도 단기 처방
선거는 4년, 산업은 10년 주기
단기 성과 집착한 정치가 문제
6·3 선거는 정치 오염 없어야
지방에 가보면 청년은 떠나고 노인만 남아 있다. 우리는 이 익숙한 풍경을 ‘지방소멸’이라 부른다. 기초자치단체 10곳 중 6곳이 소멸 위험에 놓여 있고, 부산·광주·대구와 같은 대도시도 안심할 수 없다. 지방소멸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더는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 상태, 바로 그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지방을 살리겠다며 수많은 정책과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왔는데, 지방소멸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선거철만 되면 ‘지방시대’가 등장했고, 정권은 이름만 바꾼 균형발전 정책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결과는 역설적이다. 수도권은 더욱 팽창했고, 지방은 더 빠르게 비어 갔다.
왜 그럴까. 지방소멸은 정책과 재원이 소비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된 문제다. 우리의 지방균형정책은 장기 전략이 아니라, 선거용 구호에 가까웠다. 선거가 임박하면 혁신도시 조성, 공공기관 이전 같은 정책이 반복됐다. 그러나 공간의 물리적 이전이 곧 삶의 재구성과 지역의 부흥을 의미하진 않는다. 주민들은 이유 없이 떠나지 않는다. 일자리·교육·의료·문화·주거 등 삶을 구성하는 조건이 무너진 곳에서 이동은 선택 아닌 필연이 된다. 생활권에 대한 고려 없는 분산은 ‘주중 지방, 주말 수도권’이란 이중적 삶을 낳았고, 지역경제를 실질적으로 살리지도 못했다.
지방소멸은 산업 기반의 붕괴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방은 오랫동안 제조업을 중심으로 유지됐다. 자동차·조선·철강·섬유 산업은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 지역 공동체를 지탱하는 토대였다. 그러나 제조업이 쇠약해지면서 지역은 일자리와 함께 미래를 잃었다. 청년의 이탈은 원인이 아니라 산업 기반의 붕괴라는 구조적 쇠퇴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런데도 정치의 대응은 단기 처방에 머물러 왔다. 청년이 떠나는 이유를 바꾸기보다 현금성 ‘청년 유입 사업’을 만들었고, 기업이 오지 않는 구조를 개선하기보다 지방축제를 늘렸다.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미학화에 가깝다. 그 결과 지방소멸 대책은 장기 전략이 아니라, 예산을 분배하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전락했다.
이런 경향은 지방선거의 구조와 깊이 연결돼 있다. 지방선거가 여전히 중앙정치의 연장선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권 심판, 정당 대결, 대선 전초전이란 프레임에서 지역의 질문은 사라진다. 정당 중심의 공천 구조 역시 지역 후보를 유권자보다 중앙 권력에 더 민감하게 만든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업을 단죄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규제 정책을 쏟아내는 중앙정치도 지방의 자율성을 제한한다.
지방선거는 미래를 둘러싼 경쟁의 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선거는 단기 성과와 가시적 공약에 집중된다. 산업 전환, 기술 혁신, 인력 양성과 같은 과제는 정치의 시간과 맞지 않는다. 선거는 4년을 주기로 돌아오지만, 산업은 10년 이상의 시간을 요구한다. 이 시간의 불일치 속에서 보이지 않는 투자는 항상 후순위로 밀려난다. 지방정책은 자율적 기획의 공간이 돼야 한다. 지역을 3∼4개의 거점 생활권으로 재구성하고, 입지·전력·세제·인허가 등의 조건을 바탕으로 기업 유치를 위한 경쟁을 설계해야 한다. 무엇을 키우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지역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치다. 지방은 건물 하나, 축제 하나로 살아나지 않는다. 지역을 지속시키는 힘은 산업, 특히 양질의 일자리다. 사람이 머물고 싶어지는 조건, 청년이 돌아올 가능성은 모두 경제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다.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지방의 일자리와 생활 여건이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역할은 바로 그 기반을 설계하는 데 있다.
오는 6월 3일, 소멸해 가는 지역의 방향을 바꿀 선거가 있다. 이제 지방선거의 초점은 ‘제조업이 있는 지역’ ‘경쟁력 있는 지역경제와 광역생활권’을 만드는 데 맞춰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권자들의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어떤 후보가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 산업을 살릴 환경을 설계하는가, 어떤 인재 대책이 있는가, 피상적 구호와 비방을 넘어 미래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기업가적 면모가 있는가 하고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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