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긴 길 잇고 보행환경 개선… ‘워킹 시티’ 탈바꿈

 

수영구 ~ 영화의전당 ~ 해운대

‘수영강 휴먼브리지’ 북적북적

단순 이동로 넘어선 휴식공간

금정산 ~ 낙동강 숲길도 추진

 

맨홀 사고방지 시설 등 늘리고

‘무장애 나눔길’도 속속 조성중

 

걷기 실천율, 5년새 14.6%P ↑

WHO ‘건강도시’ 인증도 획득

부산 수영강에 조성된 휴먼브리지 다리. 이 다리를 이용해 수영구와 해운대구를 가로질러 걸을 수 있다.  부산시청 제공
부산 수영강에 조성된 휴먼브리지 다리. 이 다리를 이용해 수영구와 해운대구를 가로질러 걸을 수 있다. 부산시청 제공

부산 = 이승륜 기자

“집 앞 산책길에서 강과 해변, 문화시설까지 걸어서 이어지는 일상이 부산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지난 2월 길이 254m, 폭 20m 규모로 수영강 양안을 연결하는 ‘수영강 휴먼브리지’ 준공식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이 밝힌 이 구상은 부산의 보행 정책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수영구 주거 지역과 해운대구 ‘APEC나루공원’ 및 ‘영화의전당’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됐다. 시민들이 더 이상 우회하지 않고 걸어서 이동할 수 있게 됐고, 광안리∼수영강∼영화의전당∼해운대를 잇는 보행 관광 동선도 새롭게 형성됐다. 단순한 이동 통로를 넘어 수영강 경관을 즐기며 머무는 체류형 보행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부산은 지금 ‘걷기 좋은 도시’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단순한 건강 캠페인을 넘어 도시 구조 자체를 보행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시민 삶의 질과 도시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흐름이다. 과거 끊겨 있던 길은 다시 이어지고, 위험했던 보행 환경은 개선되며, 생활권은 보다 촘촘하게 연결되고 있다.

8일 부산시에 따르면 걷기는 이제 지역의 대표적인 생활체육이자 도시 정책의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았다. 부산의 걷기 실천율은 2020년 40.7%에서 2025년 55.3%로 크게 상승했다. 5년 만에 14.6%포인트 증가하며 서울, 인천에 이어 전국 3위를 기록했다. 이는 시민들의 생활 방식 자체가 보행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지표다. 이처럼 걷는 시민이 늘어난 것은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도 걷기는 참여율 37.5%로 가장 높은 체육 활동으로 나타났다. 접근성이 높은 만큼 효과도 크다. 걷기는 심혈관 질환 예방과 사망률 감소, 의료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며 개인 건강뿐 아니라 도시의 복지와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부산시는 단절된 보행 동선을 복원하고 생활권 간 이동을 도보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주요 거점 간 보행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시민들의 이동 반경도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도시 전반의 구조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차량 중심 공간을 줄이고 보행 공간을 넓히는 방식으로 거리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공원형 거리와 생활형 광장 등 머무르는 보행 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유휴 공간을 활용한 녹지 조성과 보행자·차량 동선 분리를 위한 ‘안심도로’ 확대도 병행되고 있다. 금정산∼해운대∼낙동강을 잇는 대규모 숲길 조성도 추진되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보행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구상도 가시화되고 있다.

보행 약자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로 부산 남구 이기대공원에 조성된 무장애 숲길.  부산시청 제공
보행 약자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로 부산 남구 이기대공원에 조성된 무장애 숲길. 부산시청 제공

보행 정책의 또 다른 축은 ‘안전’이다. 2024년 기준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율은 36.5%로 자동차보다 높다. 부산의 보행자 교통사고는 연간 2772건으로, 수도권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어린이 보호구역 개선, 보행자 우선도로 확대, 교차로 안전시설 정비, 시민안전보험 운영, 골목길·전통시장 보행 환경 개선, 차량 속도 저감 설계 등을 추진하며 위험 요소를 구조적으로 줄이고 있다. 맨홀 추락 방지 장치 설치 등 생활 밀착형 대책도 병행해 보행 안전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어린이 통학로 안전 강화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부산시는 불법 주정차 단속 CCTV 41대를 설치하고, 위험 구간 249곳에 방호울타리를 구축했다. 이면도로 6곳은 일방통행으로 전환하고 학교 담장 27곳을 정비해 보행 동선을 확보했으며, 위험 지역 239곳 집중 관리와 등·하교 시간 차량 통제 구역 30곳 확대도 병행했다. 통학 안전지킴이 7939명 배치와 보호구역 893곳 실태조사도 실시했다. 시는 이를 바탕으로 638개 학교를 대상으로 ‘차 없는 길’ 등 보행 중심 통학로 모델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보행 환경 개선은 특정 구간 정비를 넘어 도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부산시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행환경개선지구를 지정하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남구 못골시장, 사하구 하단오거리, 해운대구 우동1로, 영도구 남항로 일원 등이 대상이다. 대표적으로 못골시장 일원에는 총사업비 23억5000만 원을 투입해 보행 친화 포장과 속도 저감 시설, 안내 표지 등을 설치하고 일부 구간 일방통행을 도입했다. 하단오거리(14억3000만 원)에서도 지난해 사업을 마무리했고, 우동1로(20억 원), 남항로(40억 원) 등에서도 단계적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보행 약자를 위한 ‘무장애길’ 조성도 확대되고 있다. 부산시는 총 14억 원을 투입해 금정구 윤산 일원에 ‘무장애 나눔길’을 조성 중이며, 1.13㎞ 구간을 경사도 8% 이하로 설계해 휠체어와 유모차 이용자도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갈맷길 주요 구간인 이기대공원 해안길에도 약 480m 규모의 무장애 덱길을 조성하고 휴게 쉼터 3곳을 설치했다. 해당 구간은 숲과 해안 경관을 연결하는 보행 축으로 기능하며, 다양한 식생과 생태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국제적으로도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부산시는 세계보건기구(WHO) ‘건강도시’ 인증을 획득했고, 가까운 거리에서 일상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도시 모델을 공유하는 ‘글로벌 15분 도시 네트워크’를 활용해 보행 중심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박 시장은 “걷기 좋은 환경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도시 경쟁력과 직결된다”며 “보행 중심 도시는 시민 건강을 증진하고 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은 지금 ‘차 중심 도시’에서 ‘사람 중심 도시’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며 “끊긴 길을 잇고 위험을 줄이며 생활권을 연결해 ‘걷기 좋은 글로벌 도시’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박형준(가운데) 부산시장이 지난 2024년 해피챌린지 준공식에서 주민들과 꽃밭을 조성하고 있다.  부산시청 제공
박형준(가운데) 부산시장이 지난 2024년 해피챌린지 준공식에서 주민들과 꽃밭을 조성하고 있다. 부산시청 제공

부산 갈매기들의 ‘해피챌린지’… ‘15분 도시’ 구현 한걸음 두걸음

걸어서 생활하는 동네 만들기

사상광장로 등 보행 공간 호평

일상에서 걸어 다니기 편한 도시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부산의 변화 중심에는 보행로와 생활 편의시설을 연결해 ‘걸어서 생활하는 동네’를 만드는 ‘해피챌린지’ 사업이 있다.

8일 부산시에 따르면 해피챌린지는 보행 중심 생활권을 조성해 주민 소통과 공동체 회복을 이끄는 중장기 프로젝트로, ‘15분 도시’ 개념을 실제 공간에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부산 전역 62개 생활권 가운데 대표 3곳과 시범 4곳을 선정해 2022년 사업을 시작, 내년까지 총 991억 원을 투입한다. 핵심은 생활권 내 단절된 길과 시설을 연결하고, 주민이 머물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부산진구 당감·개금 일대 1차 사업에는 약 290억 원이 투입돼 선형공원과 산책로, 보행로, 자전거길, 커뮤니티 공간이 조성됐다. 특히 수십 년간 방치됐던 통학로가 개선되며 주민 불편이 해소됐다. 현재는 2차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하구 신평·장림, 사상구 괘법·감전이 대표 생활권으로, 동구 좌천·범일과 북구 만덕이 시범사업지로 선정됐으며 총 650억 원이 투입된다.

이 가운데 사상구 괘법·감전 사업은 지난해 11월 준공을 계기로 가시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상광장로 그린카펫’ 구간은 차도와 주차 공간을 줄이고 보도와 공원을 확충해 보행 중심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구간은 향후 사상역과 괘내마을을 잇는 핵심 보행 축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준공 당시에는 야외도서관과 체험부스, 플리마켓, 버스킹 공연 등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열려 단순한 이동 통로를 넘어 생활·문화 공간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 줬다.

이승륜 기자
이승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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