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러 간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벌레들이 옮겨 가기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 벌레보다 먼저 나무가 움직이기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 나무는 움직일 때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나무를 따라 걷는다/ 나무를 비추는 불빛을 따라 걷는다

- 이수명 ‘친구를 만나러 간다’(시집 ‘정오의 총알’)

봄꽃이 우당탕 피어났다. 알기로 할미꽃 먼저, 다음은 개나리, 목련이 피고 벚꽃은 며칠 뒤. 이와 같은 순서로 찾아오지만, 올해는 서로 봄맞이하겠다고 앞다투어 피어나 뒤섞여 있다. 기후위기 탓이라고도 하던데, 당장은 보기 참 좋다.

골목을 걷다 개나리 줄기 아래 멈춰 섰다. 이토록 샛노란 생명력이라니.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 하나 있다면 꽃 사진 맘껏 찍을 수 있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꽃에 감탄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꽃 예쁜 줄 몰랐다. 시큰둥한 쪽에 가까웠다. 개나리는 개나리, 목련은 목련. 해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이니 그건 그거고 내 앞길 찾는 데 급급했다. 저 에너지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이제는 안다. 새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복이라는 사실도. 개나리 사진 한참 들여다보다가, 친구에게 보낸다. 근래 연락 뜸한, 아마도 바쁘게 살고 있을 그가 어쩐지 봄소식도 모르고 살 것 같아서. 사방 천지 꽃으로 뒤덮이고 있다는 걸 미처 모르고 출퇴근에 시달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답장이 오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어. 슬쩍 실망했다가, 나이 먹었다고 놀릴까 봐 걱정도 했다가. 모르겠다, 내처 걷기나 하는데.

친구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아무 글 없이 개나리 사진. 그 역시 걷고 있는 모양이다. 개나리 줄기 아래 서서 사진을 찍었나 보다. 봄은 나에게만 오는 게 아니지. 뿐만 아니라 나이도. 하하 웃고는 냉큼 전화를 건다. 너 어디 있냐고. 만나서 차나 한잔하자고 조르려고. 그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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