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5회계연도 국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1304조5000억 원이나 된다. 그런데 26조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현 정부는 추경안을 정당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는다. 기획예산처 장관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에 0.2%포인트 정도의 성장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추가 채무는 없다며 재정 건전성도 확보된 것으로 강조한다. 추경안에 ‘중동 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2026년도 추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선전한다.

과연 그럴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반사식으로 등장한 이번 추경이 보여주듯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상시화’한 추경의 편성과 이를 통한 재정 운용이 재정민주주의에 부합할까? 추경에 포함된 다양한 재정사업의 내용이 국민에게 그 의미가 정확하고 투명하게 전달됐으며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검증할 수 있는 재정 자료에 과연 접근 가능한가? 이번 추경이 정부의 장밋빛 전망처럼 민생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가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성과를 낳을 수 있을까? 아니, 정부는 그런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나? 나아가 이번 추경이 노무현 정부의 유산인 국가재정법의 요건에 제대로 부합하는가? 재정에 대한 법치주의에 위배되지는 않는가?

이러한 몇 가지 관점에서 평가해 볼 때, 이번 추경안도 재정민주주의 원칙을 교묘히 회피한 보여주기식 연기에 국가의 재정 여력을 소진한 저품질 예산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먼저, 재정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모든 예산안은 납세자이자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의해 면밀히 검토되고 동의돼야 한다. 4개월간의 국회 심의를 거치는 본예산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예산정책처의 검토에도 불구하고 그 심의의 강도나 예산사업 수정의 정도가 적은 편이다. 하물며 3월 말 국무회의에 4월 첫 주 민주당 주도 국회 의결이라는 것은 국회의 심의라는 민주주의 과정이 없다시피 하고 국회를 거수기로 전락시키는 셈이다. 또한, 추경은 전쟁·재해처럼 중대한 상황이 발생할 때 예외적으로 해야 한다는 국가재정법 제89조를 위반해 반법치주의 성향을 드러낸다.

사업의 예상되는 성과와 이에 대한 평가관리 시스템은 어떠한가? 고유가에 따른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한 3대 패키지에 10조1000억 원을 지출한다고 한다. 이번 추경의 40%나 되는 이런 현금이 경제에 투입되면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자동차 타고 다니는 중산층을 지원하기 위해 식료품 부담이 큰 저소득층을 희생시킨다는 것인데, 이게 민생 안정에 부합하는가? 민주당 정부 시절 숱하게 추경안이 편성됐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사업별 평가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즉, 그냥 돈 풀기에 눈먼 돈 먼저 차지해 국가재정 빼돌리기와 진배없었다는 것이다. 채무가 늘진 않지만, 재정 여력을 소진한 셈이다.

환율과 유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경제 안정을 위해 추경이 불가피하다면, 미국의 대공황 이후 뉴딜정책과 같이 그 목적에 부합하게 그간 미진했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의 확대, 산업 생산력 지원이 주된 내용이 돼야 한다.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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