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개혁 정당성, 선명성 상징 논리
폭주 통행권이자 면죄부 역할
입법 쓰나미 부작용 위험 단계
당권 경쟁 돌입하면 기회 놓쳐
文정부, 정권 재창출 실패 이유
강경파 방치하면 결국 부메랑
“문제가 생기면 그때 바꾸면 되지 않느냐.” 폭주가 반대에 부닥치거나 합리적 제동이 걸릴 때마다 여권 인사들이 전매특허처럼 입에 달았던 말이다. 국민을 실험용으로 본다는 오만함이 그 본질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개혁의 절박함과 정당성, 선명성을 증명하는 징표였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김용민 민주당 의원 등 강경파들이 이 논리를 주도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그 결과, 국가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며 전 국민적 피해가 우려되는 검찰 제도 개편은 ‘노무현 정신의 완성’으로 둔갑했다.
독주의 뿌리는 깊다.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차지한 이후, 문재인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탈원전, 부동산 및 대북 정책 등을 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윤석열 정부로 행정 권력이 교체됐지만, 민주당은 변하지 않았다. 이해찬 전 대표는 “개혁의 골든 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고 불을 지폈고, “입법 후 수정안을 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동성” “일단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고(go)’ 전략이 정치를 지배했다.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도 “정책에 완벽이란 없다”면서 “시행한 뒤 결함이 있으면 보완책을 마련해 완성도를 높여가면 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10개월은 그야말로 ‘입법의 쓰나미’였다.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은 물론, 내란·김건희·해병 관련 이른바 ‘3대 특검’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골자로 한 검찰 개혁안, 법 왜곡죄와 재판소원제 등을 담은 사법 3법 역시 일방통행식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고치자’는 논리는 모든 폭주의 ‘프리패스’였으며, ‘닥치고 개혁’이라는 맹목적 구호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60%를 웃도는 대통령 지지율과 압도적인 민주당 지지세,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의 승리 전망 등 정치적 지표는 그들의 성공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말처럼 세상에 완벽한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론화와 숙의, 치열한 토론 과정이 생략되면 더 그렇다. 이 대통령이 전쟁까지 선포하며 근절을 약속했던 산업 현장의 중대재해 사망자는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하청 노조가 800여 곳에 달하면서, 정부 부처 장관이 개별 노조와 교섭 석상에 마주 앉아야 할 판이다. 재판소원제는 국회의원이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고도 임기를 끝까지 채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사법 현장의 지표는 더욱 처참하다. 지난해 경찰이 수사를 종결하고 검찰에 송치하지 않은 사건은 59만4000여 건에 달한다. 수사권 조정 초기인 2021년과 비교해 56% 이상 폭증한 수치다. 검찰청의 미제 사건 역시 2024년 6만4000여 건에서 2025년 9만6000여 건으로 급증했다. 수치가 늘어날수록 억울한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구제받을 기회는 사라진다. 검찰의 보완수사는 서민들이 별도의 비용 없이도 정의를 구할 수 있는 ‘무료 법률 서비스’였다. 이를 잘 알기에 보완수사권 존치를 주장했던 안미현(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는 최근 “차라리 보완수사권을 없애달라”고 자포자기 심정을 피력했다. 수사 결과가 특정 진영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검사 개인과 조직 전체가 난도질당하는 현실 앞에서 수사권은 이제 ‘막강한 권력의 사유화’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는 비판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초가삼간을 태우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최대 행복”이라고 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그간 밀어붙였던 입법들을 냉정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잘못된 것은 과감히 보완·수정하고, 회생 불가능한 독소 조항은 폐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6·3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이 차기 당권 경쟁 국면에 접어들면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는 더 멀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은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된 정책임을 알고도 끝내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경파가 주도한 드루킹 사건이나 대장동 논란 등이 결국 정권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던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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