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곳에서, 그 역사의 천사는 스스로 그 잔해(殘骸)의 파편을 쌓아 올리고 그 더미를 그의 발 앞에 던져 놓는 대재앙을 보게 된다. 그 천사는 멈춰서서 죽은 자를 깨우고 산산 조각난 것을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발터 베냐민)
근자에 우리 사회에서 자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대재앙에 가까운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보수와 진보라는 양당 체제를 바탕으로 발전해 온 우리의 민주정치가 견제 세력인 보수의 몰락으로 진보 세력의 폭주를 일으켜 법치의 파괴에서처럼 균형감각을 잃고 무너져 가는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최근 보도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48% 대 18%’였다.
70년 역사를 가진 한국 민주 정치사에서 국가 건설과 산업화의 번영을 이끌어온 보수 정당이 ‘궤멸’하는 듯한 징후를 보이는 것은, 물론 지난 정부 대통령의 비상계엄이라는 잘못된 정치적 판단 때문이다. 이에 더해 불행히도 보수의 마스크를 쓴 경박하고 미숙하며 근시안적인 일부 정치인들이 개인적인 정치적 욕망을 위해 도덕성은 물론 윤리의식 같은 보수의 근본 가치를 훼손하며 일으킨 정치적 반란과 갈등으로 국민의 믿음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정권을 잃은 야당이 이렇게 파멸의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위험하고 퇴행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은, 우리 국민이 눈앞의 이익이나 ‘바람’에 의존한 나머지 민주주의 정치에서 견제 세력인 보수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 국민이, 건전한 민주사회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계급투쟁이 아니라 급진적 변화와 견제라는 변증법적 타협을 위한 긴장관계임을 인식하고, 보수 세력의 존재가 진보 세력 못지않게 사회 발전과 변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균형 있는 시각을 가졌더라면, 지금 같은 불확실성의 위험한 늪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보수주의를 체계화한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는 오랜 경험이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에 급진적 개혁은 파괴를 부른다.” 버크가 보수를 이렇게 본 것은, 급진적 개혁으로 파멸을 초래한 불완전한 인간의 제한적 이성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구성하는 합리적인 이성, 로고스”와도 깊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허용될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 또한 역사의 움직임 속에서 보수라는 기본 축(軸)이 없어지면 변증법적인 발전은 없고, 오만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도덕성을 잃고 대재앙의 혼돈에 빠져 파멸이 초래될 것임을 의미한다.
보수와 진보의 양당 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냉혹한 정치 현장에서, ‘역사 발전’이란 이름이나 조건으로 정치적 균형을 위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패배나 양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전적으로 유권자의 몫이다. 6·3 지방선거에서 일당 폭주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 유권자들이 허위적인 선전·선동에 휘말리지 않고 진실을 찾아 올바르게 투표하느냐 여부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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