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산업 지형 근본 바꾸는 AI 혁명

대학의 혁신 발원지 역할 중요

내실 다지고 시스템 혁신해야

 

기초학력 저하와 전시성 사업

창업 어렵고 빅테크 겸업 차단

상아탑 넘어설 국가 지원 절실

인공지능(AI) 혁명이 전체 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지만, 혁신의 발원지가 돼야 할 대학이 이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대학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경쟁력을 높이기에 현 시스템이 다소 경직돼 있다는 사실은 뼈아픈 대목이다.

최근 서울대 신입생 4명 중 1명이 기초학력 미달로 나타났다는 지표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실제적인 과제임을 보여주며, 교수들 역시 글로벌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안팎의 제약은 개별 대학 차원을 넘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깊이 있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이제는 대학의 외형적 확장을 고민하기에 앞서, 교수와 학생이 세계적 수준의 역량을 쌓아갈 수 있도록 대학의 내실과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하는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

대학 신입생의 학력 저하는 이제 간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학습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 아래 진행된 교육과정 축소는 이공계의 필수 기초인 미적분과 기하(幾何)를 선택 과목으로 밀어냈고, 현재 서울대를 제외한 대다수 대학은 이 과목들을 이수하지 않고도 이공계 학과에 진학하는 데 큰 제약이 없도록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하지만 상당수 의대는 여전히 미적분과 기하 성적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우수한 학생이 갖춰야 할 사고력의 기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지표다. 결과적으로 수학적 기초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입학한 학생들은 첨단 전공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이를 기피하게 된다. 정부가 중등교육의 방향을 이처럼 설정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한 공백을 대학에서라도 책임지고 보완할 수 있도록 교육 전담 교수 확충과 기초교육 인프라 구축에 전향적인 예산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주도해온 각종 인력 양성 사업 역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BK21처럼 수십 년간 지속되며 운영 노하우가 축적된 모범 사례도 있지만, 일부 사업은 실효성 낮은 해외 대학의 단기 교육에 의존하며 국외 기관의 수익원 역할에 그치고 있고, 학생들에게 전자 기기를 지급하고 보여주기식 해외 연수에 집중하는 전시성 사업은 제대로 된 인재 양성 모델이라 보기 어렵다. 이제는 이러한 사업들을 정리하고 나라 안팎의 건실한 스타트업과의 실무 연계나 대학원 연구실 인턴십을 통해 학문적 및 기술적 깊이를 체득하게 하는 등 내실 있는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사업의 성패는 단순한 참여 인원수가 아니라, 학생들이 얼마나 깊이 있는 전공 지식과 현장 해결 능력을 갖췄느냐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교수 사회가 마주한 위기 또한 심각하다. 이는 교수 개개인의 역량 문제라기보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연마할 기회를 가로막는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다. 첨단 분야 대응을 명분으로 신설 학과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교수들은 서너 개 학과를 겸무하며 연구실보다 행정 업무에 매몰되는 처지에 놓였다. 특히, 산학협력 규제는 치명적인 걸림돌이다. 교수가 혁신적인 기술로 창업에 나서더라도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겸직은 사실상 원천 봉쇄돼 있다. 미국의 교수들이 기업 현장에서 프런티어 연구에 참여하면서 압도적인 성과와 가시성(visibility)을 확보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위기감으로 다가온다. 상아탑의 담장에 갇혀 기술 변화의 웨이브에서 소외되는 현실은 결국 연구의 질(質) 저하와 국가적 기술 고립으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는 지금 세상의 규칙이 재정의되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지금 시급한 것은 외형 확장이 아니라, 대학 전체를 옥죄는 단일한 규제를 깨고 시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대학이 하나의 규칙에 얽매이기보다 각 단과대학의 특성에 맞춰 독자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유연함이 절실하다.

정부는 전폭적인 재정 지원과 함께 대학이 스스로 필요한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교수들은 이러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의 역량을 갈고닦아 세계적인 실적을 내는 데 매진해야 한다. 자율과 책임이라는 두 축이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우리 교육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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