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문학동네

 

손가락 움직이는 일 하나에도

신체 호르몬 상태가 영향 끼쳐

사회·문화 환경도 복합적 원인

 

스탠퍼드대 생물학 교수인 저자

심리·신경과학 연구 결과 인용

인간의 자유의지론 정면 반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인가, 아니면 외적 법칙에 강제되는 존재인가. 이러한 질문은 철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운명의 세 여신’이 정한 것은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어길 수 없다고 이해했다. 수많은 비극은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 발버둥치는 영웅들의 분투와 위대한 몰락을 다룬다. 그에 비해 현대인들은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 인식하며 살아간다. 삶의 숱한 갈림길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면서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에서 로버트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자유 의지란 생물학적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행동의 모든 측면엔 결정론적 선행 원인이 존재한다.” 자유 의지는 오류이고 착각이며, 과학의 성취에 대한 부정이다. 무엇보다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나를 나로 만들었는지를 탐구”하는 일을 게을리한 결과다.

새폴스키는 심리학, 생물학, 신경과학 등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 삼아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인과들을 단계별로 세밀하게 추적한다. 손가락 하나를 까닥이기 몇 밀리초 전에, 먼저 뇌의 운동피질에서 신경세포가 점화한다. 그 점화엔 며칠 전 겪은 일에 영향받아 구축된 호르몬 상태,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 태아기와 유아기 양육 환경, 청소년기의 전두엽 발달 상태, 개인의 몸에 쌓인 진화적·사회적·문화적 유산이 함께 영향을 끼친다. 수백만 년의 진화사, 수천 년의 문화사, 수십 년의 개인사가 이룩한 중층적 인과가 내 생각과 행동의 발현을 결정하는 셈이다. 여기엔 자유 의지가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결정론만이 존재한다.

결정론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 뿌리를 둔다. 데모크리토스는 세상 모든 걸 원자의 물리적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려 했다. 인간 의식이나 행동도 예외는 아니다. 이 사상은 피에르 라플라스에 이르러서 과학적 결정론으로 진화했다. 라플라스는 말했다. “이 순간 우주의 모든 입자 위치를 아는 초인이 있다면, 미래의 모든 순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 책은 현대 과학에 근거를 두고 조야했던 ‘라플라스의 악마’에게 세련된 나비넥타이를 달아준다.

저자는 자유 의지의 존재를 옹호하는 현대적 주장들을 일일이 논파한다. 특히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복잡계 이론의 창발성 등을 이용해 비결정론을 옹호하는 걸 강하게 경계한다. 미시 세계의 무작위성은 의지와 아무 상관 없고, 복잡계의 예측 불가능성은 그 바탕에 놓인 물리법칙의 인과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또 대니얼 데닛 같은 양립주의자의 주장도 부정한다. 이들은 인간 행동은 결정론을 따르지만 자유 의지도 있다고 말한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순 없으나, 죽음을 앞두고 평정을 유지할지, 불안에 떨지는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자유도 “어째서 그걸 원하는가”라는 인과적 질문을 피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저자는 강한 결정론에 근거해서 삶의 규칙을 고쳐 쓴다. 가령 유혹을 참아내며 끈기를 발휘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능력주의적 주장(그릿(Grit)이나 마시멜로 효과) 같은 건 기만에 불과하다. 끈기는 전두엽 발달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유전적 요인, 유년기 환경 등 생물학적 행운에 따라서 거의 결정된다. 따라서 성공과 실패는 개인 책임이 아니다. 성공이 스스로 노력해 얻은 특권인 양 자랑하는 건 과학적 인과에 어긋난다. 특정 자질을 강조하기보다 각자 타고난 자질을 발휘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하는 게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범죄에 대한 인과적 이해는 파격적이다. 저자는 범죄를 개인의 사악한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질병, 즉 환경적 요인과 뇌의 오작동이 결합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따라서 범죄자에게 응보적 책임을 묻거나 사회적 증오를 퍼부어선 안 된다. 사회적 안전을 위해 격리하되, 재활과 회복에 집중하고, 범죄를 유발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예방적 조치에 힘써야 한다.

이처럼 새폴스키는 자유로운 주체라는 환상에 바탕을 둔 근대적 삶의 원리를 뿌리까지 무너뜨린다. 자유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그는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그의 잘못된 선택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사회적 고립과 불평등은 그보다 타고난 생물학적 자산과 그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결과다. 사고의 이런 방향 전환은 우리 인식의 한계를 넘어 다른 삶, 다른 사회, 다른 세계를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648쪽, 4만3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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