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2

에밀리 오브리·프랭크 테타르·토마 앙사르 지음┃ 이수진 옮김┃사이

 

호르무즈, 석유 생산 3분의 1 담당

발트해, 세계의 화약고 될 가능성

북극해, 자원 패권경쟁 전장 부상

 

21세기 힘의 대결, 바다서 진행

요충지 장악 따라 세계경제 요동

지도 곁들여 지정학적 맥락 설명

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에 합의하면서, 페르시아만에 갇혀 있던 선박들이 조심스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몇 주 사이 우리는 알게 됐다. 하루 평균 130척의 상선과 거대한 유조선이 오가는 이 길목이 봉쇄된다는 것은 곧 전 세계 경제의 동맥경화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명마저 뇌리에 박혀버렸다. 바다를 장악하는 ‘해양력’이 지금 시대의 국력임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이처럼 분쟁의 무대가 세계 각지로 확장되고 쉼 없이 요동치면서, 뉴스만으로 국제정세의 맥락을 좇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백 마디 말이나 수백 페이지의 글보다, 지도 한 장이 세계정세의 뼈대를 훨씬 선명하게 요약해준다. 여기에 지정학적 위치와 특성에 대한 간결한 해설이 곁들여지면 복잡하게 얽힌 이슈의 실타래가 풀린다.

프랑스의 베테랑 언론인과 국제정치학자가 공저한 신간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2’는 바로 그런 책이다. 5대륙 28개국의 지정학적 현황을 다뤄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렌즈의 초점을 ‘바다’로 맞췄다. 여느 때보다 바다를 둘러싼 패권 갈등이 첨예해질 오늘날을 꿰뚫어본 저자들은 전 세계 주요 해협과 바닷길 21곳이 지닌 의미와 역할, 그리고 지난 분쟁의 역사를 지도와 함께 살펴본다.

가장 먼저 책을 펼쳐 페르시아만 지도를 들여다보자.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사이에 자리 잡은 페르시아만은 8개국이 빽빽하게 인접한 폐쇄적인 바다다. 이곳에서 오만만과 인도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폭이 고작 45㎞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지도로만 보아도 좁고 위태롭다. 이 좁은 바다가 중요한 이유는 단연 ‘자원’이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절반 이상이 잠들어 있고, 글로벌 생산량의 3분의 1을 담당한다.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국제제재가 강화되면서 이곳의 몸값은 더욱 뛰었다. 병목 구간의 지리적 취약성을 극복하고자 아랍에미리트(UAE)가 호르무즈 봉쇄에 대비해 육상 송유관을 건설하는 자구책을 마련했을 정도다.

2021년 선박 좌초로 발생한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 당시의 모습. 사이 제공
2021년 선박 좌초로 발생한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 당시의 모습. 사이 제공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또 다른 축은 종교와 강대국의 개입이다. 북쪽 연안의 이란(시아파 맹주)과 남쪽 연안의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 맹주)의 뿌리 깊은 알력은 석유 수송로의 안전을 직접 위협하며 군비 경쟁을 낳았다. 여기에 바레인에 사령부를 두고 3만 병력을 배치한 미국, 그리고 이란과 전략협정을 맺으며 중동 밀착을 시도하는 중국의 패권 경쟁까지 얽히며 페르시아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됐다.

그렇다면 앞으로 세계의 화약고가 될 지역은 어디인가.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면, 조용한 바다 아래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발트해’가 등장한다.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등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북쪽의 지중해’는 중세 한자동맹 시절부터 유럽의 핵심 교역로였으며, 현재도 전 세계 해상 운송량의 15%를 처리한다. 과거 소련은 동맹국들과 함께 발트해 동쪽 연안을 완전히 장악해 국가 전체 해상 교역량의 약 4분의 1을 이곳에서 처리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접근할 수 있는 항구는 단 두 곳으로 쪼그라들었지만, 발트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에너지를 수송하는 거대한 동맥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발트해에 서늘함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을 잇던 핵심 해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 1, 2’가 폭발하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연결하는 가스관마저 파손되었다. 직접적인 무력충돌만 없을 뿐, 해저 인프라를 겨냥한 사보타주 속에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다.

책은 이 밖에도 지중해를 장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브롤터 해협, 미국의 통제력에서 벗어나고 있는 파나마 운하,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해 새로운 패권 다툼의 장으로 떠오른 북극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까지 두루 추적한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패권을 쥐었던 시대가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상무역으로, 18세기 영국은 연이은 해전으로 강대국으로 도약했다. 미국 역시 세계대전으로 키운 막강한 해군력 덕분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해양 패권의 시대’다.

발 빠른 독자들은 혼돈의 시대에 지도가 답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챈 듯하다. 책의 전작은 최근 서점가에서 사회·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1위로 역주행했다. 여기에 최근 출간되고 있는 ‘공급망의 위기’ 관련 책까지 함께 읽는다면, 세계정세를 꿰뚫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272쪽, 3만1000원.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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