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핵전쟁은 승리할 수 없으며, 결코 싸우게 돼서는 안 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이 경고는 냉전의 유산이 아니라,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현실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도 핵을 ‘사용되지 않을 무기’로 가정하는 사이, 북한은 그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전장을 하나씩 완성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을 가진 군대’에서 이제는 ‘핵을 쓰는 군대’로 진화하는 중이다.

최근 북한이 공개한 일련의 시험과 훈련 속에 변화가 보인다. 이달 초 북한은 전자기 공격과 탄소섬유탄을 통한 전력망 무력화, 집속탄을 활용한 초토화 능력을 과시했다. 지난 3월 말에는 드론과 보병·기갑이 결합된 종합타격훈련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한 무기 개발이 아니라, 전장을 열고 교란하며 마비시킨 뒤 타격하는 핵과 재래식의 통합작전 개념이다.

핵심은 ‘결합’이다. 북한은 저비용 대량타격 수단과 전장 교란 능력, 그리고 방공무기를 하나의 체계로 묶고 있다. 전자기 공격과 전력망 교란으로 지휘체계를 마비시키며, 값싼 자폭 드론과 다연장로켓으로 먼저 방공망을 소모시킨 후 탄도·순항 미사일의 정밀타격과 최신 전차 등 기갑장비 돌파로 전장을 압도하려고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북한식으로 재구성해 우리의 방어체계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이 와중에 정부는 최근 일반전초(GOP) 경계병력을 4분의 1 수준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과학화 경계체계로 보완하겠다지만, 감시와 대응은 기술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감시자산은 ‘보는 것’에서 멈출 뿐이고, 대응은 결국 사람이 한다. 특히 드론과 소규모 침투, 복합적인 교란이 결합되는 상황에서는 전선의 밀도와 즉응성이 결정적이다. 병력 감축은 단순히 수치의 감소가 아니라, 전선의 빈틈을 뜻한다.

더 큰 문제는 인식이다. 우리는 스스로 ‘세계 5위 군사력’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는 기준도 근거도 불분명한 허구의 랭킹을 인용한 자기 위안이자 북한의 핵 무장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군사력은 양보다 구조가 더 중요하다. 첨단 전투기와 전차, 미사일의 숫자만이 아니라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얼마나 빠르게 결심과 타격으로 이어지느냐가 본질이다. 북한은 이 ‘결심-타격의 속도’와 ‘비용 대비 효과’에 집중한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플랫폼 중심 사고에 머물러 있다. 고가의 전력은 늘어나지만, 이를 통합하는 전장 관리와 저비용 대응 수단은 부족하다. 저가 자폭 드론에 저비용 방어로 대응하지 못하고, 대량 공격에 물량으로 맞설 준비도 충분치 않다. 그 사이 전선은 얇아지고 병력은 비어간다. 이런데도 전시 작전통제권 회수를 외치고 막상 군사 혁신을 하지 못하니, 구조적 취약성만 확대될 뿐이다. 이런 때 한미동맹이라도 굳건해야 하는데, 정부의 미온적인 이란 전쟁 대응은 동맹의 간극만 키울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냉정한 자기 평가다. 북한은 이미 전쟁의 방식을 혁신하고 있다. 응당 우리도 혁신해야 한다. 감시와 대응의 밀도를 유지하면서 저비용 대량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전장 교란에도 기능하는 지휘·통제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잖으면 군사력과 K방산 자화자찬은 한낱 쇼에 불과할 뿐, 핵전쟁을 막지 못할 것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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