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8일 바티칸에서 일반 알현식에 참석한 레오 14세 교황.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월 28일 바티칸에서 일반 알현식에 참석한 레오 14세 교황. 로이터 연합뉴스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가 10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X를 통해 “하느님은 그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으신다”며 반전(反戰) 메시지를 던졌다.

레오 14세는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과거에 칼을 들었거나 오늘날 폭탄을 투하하는 이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군사 행동은 자유나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며 “평화는 오직 공존과 대화를 끈기 있게 증진할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이 특정 국가나 인물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외교가는 이번 발언이 이란과의 분쟁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전쟁에서 우리 편에 서 계신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역시 이번 갈등을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전쟁”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성전(聖戰)”이라고 지칭하며 종교적 수사를 동원해왔다.

레오 14세는 같은 날 게시한 또 다른 글에서도 “기독교 동방의 성지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이 확산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전쟁이라는 신성모독과 이익 추구의 잔혹함 속에서 인간의 생명은 ‘부수적 피해’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며 “어린이와 가족 등 약자들의 생명보다 가치 있는 이익은 없으며, 그 어떤 명분도 무고한 피를 흘리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미국 시카고 출신인 레오 14세는 교황청 역사상 첫 미국인 수장으로, 취임 초부터 미국 행정부와 긴장 관계를 형성해왔다. 그는 오는 7월 4일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달라는 트럼프 정부의 공식 요청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교황청을 압박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미 매체 ‘더 프리 프레스’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최근 주미 교황청 대사인 크리스토프 피에르 추기경을 국방부로 초치해 강하게 질책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콜비 차관은 이 자리에서 “미국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관철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했다”며 “교황청은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승현 기자
권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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