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 명예교수

프롤로그: 전쟁은 멈췄지만, 질서는 바뀌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된 상황을 묘사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그림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된 상황을 묘사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그림

미국과 이란은 전면 충돌 직전에서 극적으로 멈춰 섰다. 최후통첩 시한을 불과 90분 앞두고 2주간 휴전합의는 했지만 해협을 두고 힘겨루기가 진행중이다,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도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자유로운 개방’이 아니었다.

바다는 열렸지만, 흐름은 통제되고 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수천 척의 선박이 얽혀 있으며, 통과는 가능하지만 조건과 순서, 그리고 비용이 따른다. 해협은 더 이상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 선택되고 관리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전술적 조정이 아니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는 대신, 위협을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실제 공격이 없어도 위협의 존재만으로도 보험료와 운임이 상승하고 에너지 가격이 요동친다.

위협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비용이 따르는 가격이 된다.

전쟁은 ‘파괴’에서 ‘비용을 발생시키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해협을 막지 않고도 흐름에 가격을 붙일 수 있다면, 전쟁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는 것이 된다. 이제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상교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위험이 설계되고, 비용이 부과되며, 질서가 거래되는 공간이다. 전통적인 ‘현존함대(Fleet in Being)’ 개념은 함대의 존재 자체가 적을 억제하는 군사적 효과를 설명하는 데 유용했다. 그러나 이번 중동 사태에서 드러난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 구조는 이 개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서도, 그 위협의 존재만으로 전 세계 해운과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군사적 억제를 넘어, 위협 자체가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 가격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본 칼럼은 이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분석 틀로서, 기존 개념을 확장한 ‘현존위협(Threat in Being)’을 제시한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비용을 수반한 가격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 명예교수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 명예교수

I. 국제법의 붕괴 …자유 항행은 끝났는가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법이 보장해온 ‘자유 항행’의 상징이자 세계 경제의 동맥이었다. 이 좁은 해협을 통해 전 세계 원유의 약 20%가 이동한다는 사실은, 이 공간의 통제가 글로벌 질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제법은 이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유엔해양법협약은 호르무즈와 같은 국제해협에 ‘통과통항(Transit Passage)’ 권리를 인정한다. 이는 단순한 ‘무해통항(Innocent Passage)’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무해통항은 연안국의 일정한 통제와 제한이 가능하지만, 통과통항은 그러한 재량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박은 중단 없이,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통과할 권리를 가진다. 이론적으로는 어떤 국가도 이 해협에서 통행을 제한하거나 비용을 부과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작동한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서도 ‘선별적 통제’를 통해 흐름을 조정하고 있다. 일부 선박은 지연되거나 제한되고, 일부는 통과가 불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사실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형식상 통과통항은 유지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질서가 작동한다.

법은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이를 명백한 위반으로 비판하지만, 질서는 유지되고 있다. 이유는 국제법은 규범이지만, 이를 강제할 힘은 제한적이다. 특히 호르무즈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에서는 법보다 ‘통제 능력’이 질서를 결정한다.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국제법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지만, 현실정치는 ‘무엇이 가능한가’를 결정한다. 지금 호르무즈에서는 법이 아니라 힘이 질서를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협통제와 통행세 부과가 일정 부분 용인된다면, 이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질서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국가가 이를 모방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가능성’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한 번 가격이 붙은 바다는 다시 무료로 돌아가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은 지금, 자유의 공간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세계 질서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국제법이 멈추고 현실정치가 작동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그림
국제법이 멈추고 현실정치가 작동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그림

II. 현실 정치의 승리… 왜 이란만 가능한가

국제법은 명확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왜 다른 국가는 하지 못하는 일을 이란은 할 수 있는가. 답은 ‘힘의 구조’에 있다. 말라카나 지브롤터 해협과 달리, 다른 연안국들은 통행 통제를 시도할 경우 감당해야 할 정치·군사적 비용이 너무 크다. 그러나 이란은 다르다.

첫째, 정치체제다. 이란은 장기간 제재와 고립 속에서 독자적 생존 구조를 구축해 왔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추가 비용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른 국가라면 부담이 될 제재가 이란에게는 이미 ‘기본 상태’다.

둘째, 군사적 조건이다. 이란은 전통 해군력에서는 열세지만, 호르무즈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는 비대칭 전력이 효과를 발휘한다. 기뢰, 고속정, 미사일, 드론은 좁은 해역에서 충분히 위협적이다. 핵심은 전면전의 승리가 아니라 ‘위협의 지속성’이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할 필요가 없다. 봉쇄 가능성과 공격 위험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선박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셋째, 전략적 의지다. 이란은 해협을 방어선이 아니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한다. 핵문제, 제재 해제, 체제 보장 등에서 해협 통제는 핵심 카드로 기능한다.

결국 이란은 세 가지를 결합한다.

통제능력, 비용을 감내할 체제, 그리고 이를 활용하려는 의지. 이 조건이 갖춰질 때 ‘통행세’라는 질서가 등장한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니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흐름을 통제하는가. 호르무즈에서 그 답은 분명하다. 지금 질서를 만드는 것은 법이 아니라, 이란이 구축한 ‘위협의 구조’다.

국제법과 트럼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란만 통항세를 거둘수 있는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국제법과 트럼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란만 통항세를 거둘수 있는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봉쇄에서 ‘통제된 개방’으로 … 시장이 된 바다

전쟁 초기, 이란의 선택지는 단순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봉쇄해 세계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완전 봉쇄는 곧 전면전을 의미한다. 에너지 공급망과 금융시장이 동시에 흔들리며, 국제사회의 즉각적 군사 대응을 초래한다. 강력하지만 지속 불가능한 전략이다.

그래서 이란은 방향을 바꿨다. 해협을 닫는 대신, 열어두되 통제하는 방식. 이른바 ‘통제된 개방(Controlled Access)’이다. 모든 선박을 막지 않고, 일부는 통과시키고 일부는 지연시키며 위험을 분산시킨다. 통과는 가능하지만 예측할 수 없고 조건이 붙는다. 이 불확실성이 핵심이다.

완전 봉쇄보다 더 정교한 압박이다. 현재 해협에는 수천 척의 선박이 병목 상태에 놓여 있으며, 통과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물리적 봉쇄가 아니라 ‘기능적 봉쇄’에 가깝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정치적 효과다. 선택적 통제는 국제사회를 분열시킨다. 일부는 통과하고 일부는 비용을 더 부담하면서, 공동대응 대신 개별 대응이 강화된다. 외교는 집단이 아닌 거래로 전환된다. 이것이 ‘갈라치기 전략’이다.

이제 호르무즈는 더 이상 열린 바다가 아니다. 조건에 따라 접근이 허용되는 ‘관리된 공간’이다. 더 나아가, 하나의 시장으로 작동한다. 위험은 상품이 되고, 불확실성은 가격이 되며, 통과는 거래의 대상이 된다. 흐름 자체에 가격이 붙는다.

바다는 이제 거래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해양 질서(Shadow Maritime Order)’다. 명시적 규칙은 없지만, 누가 통과하고 어떤 비용을 지불하는지에 대한 질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완전 봉쇄보다 더 효과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해협은 열려 있지만 자유롭지 않다. 통과는 가능하지만 비용이 따른다. 이것이 지금 호르무즈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현실이다.

현존위협(Threat in Being)으로 통과세가 작동하는 해협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현존위협(Threat in Being)으로 통과세가 작동하는 해협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핵심 이론 … ‘Threat in Being’: 위협이 가격이 되는 순간

전통적 해군전략에서 ‘현존함대(Fleet in Being)’는 매우 잘 알려진 개념이다.

함대를 실제로 출동시키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 적의 행동을 제약하고 전략적 선택을 제한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즉, ‘함대존재’가 곧 억제력이다. 그러나 지금 호르무즈에서 작동하는 구조는 이 개념을 넘어선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언제든지 봉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실제 행동보다 더 큰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지점까지는 ‘Fleet in Being’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다르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 ‘존재하는 위협’이 단순한 억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보험료 상승, 운임 증가, 물류 지연, 에너지 가격 변동이라는 형태로 즉각적인 ‘비용’을 발생시킨다. 다시 말해, 위협은 행동을 제한하는 수준을 넘어, 경제적 손실을 직접 만들어낸다. 이것은 더 이상 억제가 아니라 가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개념은 한계를 드러낸다. ‘Fleet in Being’은 군사적 억제 효과를 설명하는 데는 충분하지만, 위협이 경제적 비용으로 전환되는 구조까지는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그 경계를 명확히 넘어섰다. 위협은 더 이상 잠재적 위험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경제적 부담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분석 틀이 필요하다. 본 칼럼에서 제시하는 ‘현존위협(Threat in Being)’은 바로 이 지점을 포착하기 위한 개념이다. 이는 기존의 ‘Fleet in Being’을 확장한 것으로, 단순히 존재 자체가 억제력을 형성하는 수준을 넘어, 그 존재가 경제적 비용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구조를 의미한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위험의 지속성’이다.위협은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유지된다. 해협은 완전히 닫히지 않지만, 언제든지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된다.

둘째, ‘비용의 자동 발생’이다. 실제 공격이 없어도 비용은 발생한다. 보험사는 위험을 반영해 프리미엄을 올리고, 선사는 운임을 인상하며,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격에 반영한다.

셋째, ‘통제의 비가시성’이다. 이 모든 과정은 명시적인 명령 없이 작동한다. 누가 얼마를 부담해야 하는지, 어떤 선박이 먼저 통과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되면서, 하나의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위협은 더 이상 ‘행동 이전의 상태’가 아니다. 그 자체로 이미 효과를 발생시키는 ‘작동 중인 시스템’이다.

이 개념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특정 사례를 넘어, 현대전의 성격 변화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전쟁은 더 이상 물리적 파괴를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방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위협을 관리하고 유지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비용을 발생시키는 구조가 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란은 바로 이 ‘현존위협(Threat in Being)’ 전략을 선택했다.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면 단기간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전면전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반면, 위협을 유지하는 전략은 더 낮은 위험으로 더 지속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단기적 충격이 아니라, 장기적 부담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이다.

결국, ‘현존위협(Threat in Being)’은 단순한 전략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목적과 수단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억제에서 가격으로, 파괴에서 관리로, 단절에서 통제로의 이동. 이 변화 중심에 바로 이 전략개념이 있다. 그리고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통과세에 부과 여부는 트럼프의 의지에 달린 것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통과세에 부과 여부는 트럼프의 의지에 달린 것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V. 협상과 수익 … 통행세의 제도화

호르무즈 해협 사태는 군사 충돌로 시작됐지만, 그 종착지는 ‘종전’이 아니라 ‘제도화’다. 전쟁은 멈췄지만 구조는 남는다.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은 단순한 충돌 중단이 아니라 협상과 질서 재설계의 시간이다. 특히 해협 통과 문제에 ‘통행료’가 공식 의제로 올라왔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통행세는 더 이상 비공식 압박 수단이 아니다. 협상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제도’로 이동하고 있다. 이란은 해협 통제를 유지하고, 그 비용을 재건 자금으로 활용하려 한다. 선박당 수백만 달러 규모의 통행료 구상도 논의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요구가 아니다.전쟁을 ‘수익 구조’로 전환하려는 전략이다. 과거에는 승리 이후 이익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긴장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이 창출된다. 위협이 유지되는 한 비용도 계속된다. 이 구조는 이란에는 지속적 수익을, 상대에는 누적된 부담을 강요한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트럼프의 강력한 의지다. 트럼프는 해협 정상화를 강조하면서도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언급했다. 이는 새로운 수익 구조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통행료 공동 관리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미국 역시 이를 전면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전통적 ‘항행의 자유’와 다른 접근이다. 완전한 자유 대신 통제된 안정 속에서 비용과 이익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현실화된다면, 해협은 공공재가 아니라 ‘가격이 부과되고 수익이 분배되는 전략 자산’으로 전환된다. 물론 국제사회 반발과 이해관계 충돌 등 변수는 존재한다. 그러나 방향은 이미 설정되었다.

통행세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협상 가능한 현실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꾼다. 그리고 그 방향은 분명하다. 파괴에서 수익으로, 종결에서 관리로. 호르무즈는 그 전환의 중심에 서 있다.

VI. 트럼프의 계산…승리인가, 타협인가

이번 호르무즈 사태에서 가장 복잡한 행위자는 이란이 아니라 미국, 더 정확히는 트럼프다. 그는 “100% 승리”를 선언하며 군사적 성과를 강조했고, 단기간 내 주요 목표를 달성하며 협상 주도권을 확보했다. 겉으로는 전형적인 ‘힘을 통한 외교적 승리’다.

그러나 이면은 다르다.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기보다, 전쟁의 ‘비용’을 관리하려 한다. 이번 휴전은 종전이 아니라 협상 시간이며, 동시에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다. 반전 여론과 에너지 가격 상승은 곧 유권자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이는 선거를 앞둔 직접적 리스크가 된다.

트럼프에게 시간은 이란보다 빠르게 흐른다. 이란이 ‘지속 가능한 긴장’으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한다면, 트럼프는 ‘빠른 성과’로 정치적 생존을 확보해야 한다. 이 비대칭 속에서 그는 압박과 후퇴를 반복하며 가장 유리한 조건을 탐색한다.

그래서 그의 행보는 일관되지 않아 보인다. 통행세 공동 징수에 대해 긍정과 유보를 반복하는 발언 역시 단순한 변덕이 아니다. 이는 협상에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이자, 동시에 아직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이 구조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원칙적으로 거부할지를 두고 전략적 선택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트럼프는 이 구조를 정말 원하지 않는가. 오히려 통행세 구조는 그에게도 유리하다. 해협이 완전히 봉쇄되지 않는 한 경제는 유지되고, 긴장은 협상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군사개입 명분과 동시에 영향력 유지 수단이 된다. 결국 이 구조는 ‘위험하지만 통제 가능한 상태’를 만들어낸다. 전면전보다 훨씬 효율적인 선택이다. 이란이 ‘위협 유지’를 택했다면, 트럼프는 ‘위협 관리’를 택한 셈이다.

결국 양측은 같은 지점으로 수렴한다.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아닌 상태에서 각자의 성과를 확보하는 구조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관리되는 상태’로 전환된다. 트럼프의 선택은 군사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경제·외교가 결합된 전략이다. 지금 벌어지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둘러싼 협상이다.

VII. 새로운 질서 …바다의 금융화와 패권의 이동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해상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질서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핵심은 ‘금융화’다. 과거 해협이 물리적 통로였다면, 지금은 비용이 발생하고 가격이 형성되는 ‘금융적 장치’로 변모하고 있다.

바다는 이제 거래된다. 통행세는 단순한 통과 비용이 아니라, 위험과 불확실성, 통제에 대한 ‘지정학적 가격’이다. 이 구조는 에너지 시장과 금융 질서가 결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결제 방식이 중요하다. 이란이 위안화나 가상자산 등 대체 결제를 시사하는 것은, 달러 중심의 에너지 거래 구조, 즉 ‘페트로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제 에너지 거래는 달러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이는 미국의 금융 패권을 지탱하는 핵심 구조였다. 에너지 거래가 달러로 이뤄지는 한, 미국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르무즈에서 등장한 통행세 구조는 이 전제를 흔들고 있다. 만약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위안화나 디지털 자산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에너지 흐름과 금융 흐름이 동시에 재편되는 계기가 된다.

결국 바다의 통제는 금융의 통제로 확장된다. 이란은 해협 통제를 통해 물리적 흐름 위에 금융 구조를 얹고 있으며, 이는 지역 전략을 넘어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단기간 내 완전한 변화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이 현실로 제기됐다는 점이다.

패권은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 호르무즈는 그 출발점일 수 있다. 중국 역시 에너지 의존과 위안화 국제화 전략 속에서 이 변화의 이해당사자다. 결국 이 공간은 군사, 경제, 금융이 결합되는 지점이 된다. 해협은 더 이상 통로가 아니라 ‘패권이 작동하는 공간’이며, 바다는 이미 거래되는 질서로 들어섰다.

결국, 이 공간은 세 가지 축이 만나는 지점이 된다. 군사적 통제, 경제적 흐름, 그리고 금융적 질서. 이 세 요소가 결합될 때, 해협은 ‘패권이 작동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지금 호르무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바로 그것이다. 바다는 권력이 작동하고, 가격이 형성되며, 질서가 재편되는 중심 무대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질서를 만든다는 장면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질서를 만든다는 장면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에필로그: 바다를 쥔 자가 세계 질서를 다시 쓴다

전쟁은 멈췄지만 끝난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계속되고 있다. 지금 이 전쟁은 더 이상 파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흐름을 통제하고, 비용을 부과하며, 질서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완전 봉쇄 대신 위협을 유지하고, 그 위협은 보험료와 운임, 에너지 가격으로 전환돼 전 세계에 부담을 확산시킨다. 미사일 한 발 없이도 전쟁은 계속된다.

이것이 바로 ‘현존위협(Threat in Being)’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위협의 존재 자체로 억제를 넘어 비용을 발생시키는 구조. 이는 단순한 전략이론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작동하는 질서이며,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패턴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그 출발점이다. 이란은 이 공간에서 해협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아도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봉쇄 없이도 압박을 가하며, 그 압박을 경제적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선례다. 한 번 가격이 붙은 바다는 다시 무료로 돌아가지 않는다. 통제된 흐름 역시 완전한 자유로 복원되기 어렵다. 국제법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제 바다는 공공재가 아니라, 관리되고 가격이 부과되는 전략적 공간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도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흐름의 바깥에 설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 호르무즈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이는 외교를 넘어 에너지 안보와 경제 안정, 해양 전략의 문제다. 바다의 변화는 곧 국내 경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 역시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바다는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공간’이다. 존재 자체로 억제력을 형성하고, 필요할 경우 흐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것이 필자가 강조해 온 ‘능동적 현존함대(Active Fleet in Being)’ 전략의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그 공간에 있는가. 호르무즈에서,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또 다른 해협에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곧 힘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비용이 수반된 가격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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