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100년 전 이번 주, 신문에 유난히 눈에 띄는 두 여성의 사진이 연이어 게재됐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여성의 사연을 차례로 들어보자.

첫 번째 이야기는 1926년 4월 17일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다. “동경 삼산(杉山)의 집에 하숙하고 있는 중추원(中樞院) 참의(參議) 박제헌 씨의 영양(令孃·딸) 박정진(23) 양은 4월 15일 오전 9시에 쥐 잡는 약을 먹고 이전에 하숙하고 있던 내등(內藤)의 집에 가서 혼도(昏倒)하여 마침내 절명(絶命)이 되었다. 자살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으나 평소에 열렬한 예수교 신자로 문학과 철학서 등을 탐독하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염세(厭世)자살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자기 부친과 하숙하고 있는 삼산과 환산(丸山) 목사에게 보내는 3장의 유서가 있었더라는데, 삼산에게 보낸 유서에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 죽는다’는 의미가 쓰여 있었다더라. 자살한 박 양은 지난 3월에 동경 ‘오자노미수’ 여자고등 사범과를 우등 성적으로 졸업한 재원으로 조선 여자로 중등 교원의 면장(免狀)을 가진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 한다. 경성 소격동 41번지 박 양의 자택에서는 뜻 아닌 비보를 접하고 그의 양친(兩親)은 물론이요, 박 양의 오라버니 되는 박팔양 씨의 놀람은 비할 곳이 없고, 안팎에는 울음소리조차 낭자한 중인데, 박팔양 씨는 15일 밤 급행열차로 급거 동경을 향하여 출발하였다더라.”

같은 날 역시 매일신보의 가십난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며 당시의 시선과 해석을 덧붙였다.

“동경에서 조선 여학생이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상당한 신분과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 그 같은 규수가 자살하기까지에는 말 못 할 고민도 많았으렸다. 그러나 원인에 대하여는 실연(失戀)이냐, 염세증(厭世症)이냐 하는 의문이 아직도 풀리지 못한 모양이다. 우에노(上野)공원에 꽃 빛도 한창 좋을 때 실연 자살이라면 너무나 애달프며, 염세자살이라면 너무나 가여운 일이다. 그러나 사(死)는 만사를 해결하는 것이니 이미 죽은 이에게야 만사태평이겠지.”

두 번째 이야기는 다음 날 조선일보에 실린 전(全)빨렌취 양의 사연이다. “노국(露國·러시아) ‘허바롭스크·Khabarovsk’에서 출생하여 3년 전에 그곳 중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합이빈(哈爾濱·하얼빈)에서 영어와 노국 문학을 연구하는 전빨렌취(20) 양이 금일 아침 특급 열차로 경성에 들어와 방금 조선호텔에 체재 중이다. 전 양은 함남 단천에 원적을 두고 현재 합이빈에 주거하는 전태국 씨의 영양으로 성격이 활발하고 화려한 용모를 가졌으며 ‘딴스(댄스)’에 비범한 재간이 있어 노국 재학 당시에도 성적이 우량하였고 여러 사람에게 고임(유난히 귀여워하고 사랑함)을 받았다. 전 양은 방문한 기자에게 서투른 조선 말로, ‘내 나라 땅을 밟았다고 생각한즉 한없이 기쁜 마음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그리고 경의선 철도에서 조선 산천을 차창으로 내다볼 때 감개무량한 회포가 떠돕디다. 나는 조선 사람으로 조선 말이 잘 통하지 못하므로 한편 부끄럽기도 하고 내 속에 있는 말을 다 하지 못함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합니다’라며 웃음을 띠더라.”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