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닐 세다카 ‘오 캐럴’
기억의 사물함엔 품목도 다양하다. 소설과 영화 중엔 제목(첫인상)이 훈훈해서 반입된 사례가 더러 있는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도 그 중 하나다. 감동의 포인트는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온 투명한 슬픔’이다.
2026년 4월 인류의 눈앞에서 펼쳐진 장엄한 서사를 목격하던 중 나는 불현듯 그 서적과 필름을 대출할 필요를 느꼈다. 다만 세상의 그릇에 담기엔 용량이 초과라서 앞글자 2개는 큰 걸로 바꿨다. ‘우주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청년 시절 송골매는 ‘산꼭대기 올라가 거리를 보고 세상을 보고 더 오를 곳이 없으니 더 느낄 것도 없더라’고 외쳤다. 그 형들이 만약 우주에 올라 지구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인류 역사상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우주 항로 기록을 세운 아르테미스 2호 비행사들은 감회를 숨기지 않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여러분은 하나의 존재로 보인다. 어디에서 왔건, 어떻게 생겼건 상관없이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 하나의 인류다.”
살다 보면 인생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자들은 벌써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을 테지만 누가 감독이더라도 빠트릴 수 없는 자료화면이 있다. 탐사선 사령관(리드 와이즈먼)이 태어나기 6년 전(1969)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에서 내리는 장면이다. 이미 명언의 전당에 입성한 문장이 거기 나온다. “한 인간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소년은 차근차근(Step by Step) 발걸음을 옮겨갔다. 해군 조종사가 된 후에는 이라크전쟁에 파병됐고 2009년 6월에는 나사(미 항공우주국)의 우주비행사로 뽑혔다. 카메라는 일터와 쉼터를 번갈아 비춘다.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하는 아내 캐럴은 두 딸과 함께 남편이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헌신한다. 여기까진 행복한 여정이다. 하지만 계절이 벚꽃엔딩에 보조를 맞춘다고 운명도 해피엔딩에 협조하진 않는다. 청천벽력처럼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와이즈먼은 우주비행의 꿈을 접고 아내의 곁을 지키려 하지만 캐럴은 단호했다. “꿈을 멈추면 안 돼요. 계속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세요.” 2020년은 그의 인생 여정에서 도려내고 싶은 해였다. 어머니와 아내(46세)를 불과 한 달 사이로 잃었다.
인생도 그렇지만 달 표면에도 수많은 충돌구가 있다.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구덩이다. 이번에 발견된 것 중 하나에 캐럴이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한 건 동행한 요원들이었다. “우리는 여정의 한복판에서 사랑하는 가족 한 명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캐럴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박또박 철자를 읊었고 그 음성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C-A-R-R-O-L-L
스펠은 다르지만 음악동네에도 유명한 캐럴(C-A-R-O-L)이 있다. 싱어송라이터 캐럴 킹(1942년생)이다. 올 2월에 타계한 닐 세다카(1939∼2026·사진)는 그녀를 위한 노래(‘오 캐럴’)까지 만들었다. 노랫말처럼 사랑 앞에선 누구나 바보가 된다(Oh! Carol I am but a Fool). 이번에 우주에서 전 인류에게 생방송으로 전파한 사랑 고백 장면엔 캐럴의 자작곡 ‘친구가 있잖아요’(You’ve got a Friend)를 깔아도 어색하지 않을 성싶다.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And nothing, nothing is going right) 눈을 감고 날 떠올린다면(Close your eyes and think of me) 곧장 내가 그리로 갈게요(And soon I will be there).’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남은 자와 떠난 자의 주소가 달라질 뿐 마음을 갈라놓진 못한다. 하물며 그것이 사랑임에랴.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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