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이스라엘에서 성경과 관련된 날 외에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날은 ‘욤 하쇼아’(홀로코스트 추모일), ‘욤 하지카론’(현충일), ‘욤 하츠마우트’(독립기념일)라고 한다. 결코 잊을 수 없고, 맹세코 잊어서도 안 되는 날들이다. 제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자행한 집단 학살의 600만 명 희생자, 1948년 독립전쟁 희생자, 이후 수차례 중동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국가 생존력의 근원 중 하나다. 대다수 가정이 홀로코스트, 또는 독립전쟁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다. 가족의 역사가 곧 나라의 역사인 셈이다.

13일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 시작일이다. 실제 대참극이 종식된 날은 1945년 1월 27일이다. 이날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해방시켰다. 유엔이 지난 2005년 공식적으로 지정한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도 이날로, 각국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다. 이스라엘의 추모일은 매년 다르다. 종교적 이유로 양력과 음력을 합친 유대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유대력의 올해 니산달(1월) 27일은 4월 14일인데, 추모 행사는 전날 해 질 녘부터 24시간 진행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 SNS에 이스라엘군이 건물 옥상에서 사람을 던지는 듯한 영상을 공유하며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올려 외교 마찰로 비화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앞두고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발언을 했다”며 “강력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반발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는 세계인의 지적을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두 차례나 반박했다. 12일에도 “보편적인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홀로코스트와 전시 반인권 범죄 간에 경중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영상은 2024년 9월 촬영됐고, 조사와 조치도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느닷없이 옛일을 검증도 없이 들먹인 데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보편적이지 않은 ‘선택적 인권’이 된다. 이스라엘과 갈등을 형성해 중동에서 이득을 취하려 했다면, 인권을 외교 도구로 활용한 나쁜 정치가 된다. 이를 ‘외교 천재’라고 칭송하는 사람들마저 있다니.

오승훈 논설위원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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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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