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빌드 업’ 없었던 이상한 전쟁
죽은 하메네이의 ‘광인 작전’
물가와 시간에 쫓기는 트럼프
이란 협상 버티기에 초조한 美
미 보수의 새 희망 떠오른 밴스
그 행보가 트럼프 말보다 중요
‘CIA보다 모사드를 더 믿었다.’ 뉴욕타임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직관과 본능이 이란 전쟁 방아쇠를 당겼다고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부추김에 내부 참모들의 합리적 반대조차 소용없었다. 이번 전쟁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전쟁 전에 세 가지 빌드업(예비공작)을 빠뜨리지 않았다. 첫째, 시간이 걸려도 유엔과 동맹국을 설득해 다국적 연합군을 구성했다. 둘째, 여론전을 통해 명분을 축적하며 국내 전쟁 지지율을 70% 위로 끌어올렸다. 셋째, 지상군을 포함해 10만 명 이상의 압도적 병력을 배치했다. 이번에는 없었다. 최고 동맹인 영국마저 팔짱을 끼었다. ‘미국의 전쟁’이 아니라 ‘트럼프의 전쟁’으로 변질된 것이다.
전쟁 목표도 불분명했다. 신정 체제 붕괴→내부 봉기→정권 교체→이란의 핵 능력 제거→군사력 약화로 골대를 계속 옮겨 다녔다. 지금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목을 매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과 핵 농축을 3.67% 밑으로 제한하고 고농축우라늄(HEU)은 러시아로 반출하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했었다. “오바마가 망친 것을 내가 바로잡겠다.” 트럼프는 이 합의를 깨고 전쟁까지 벌였지만, 지금 세계는 묻고 있다. “이란의 60% HEU 440㎏은 어디 있는가?” “왜 이란이 호르무즈를 막고 통행세를 거두는가?”…. 결국 역사만 후퇴시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란의 알리 하메네이는 죽었지만, 그가 세운 ‘광인 작전(Operation Madman)’은 살아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막아 ‘비용 극대화’를 압박하고, 드론과 미사일을 섞어 쏘아 장기 소모전을 유도하는 비대칭 전술이다. 반전 여론을 일으키고 상대방을 지치게 해 전쟁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은 물가와 시간이다. “바이든이 올려놓은 물가, 내가 잡겠다.” 트럼프는 물가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3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3% 치솟았다. 이란 전쟁 역풍으로 휘발유 가격은 무려 21.2% 급등했다. 자신의 공약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시간도 트럼프 편이 아니다. ‘속전속결-조기 종전-물가 안정-중간선거 승리’의 타임라인은 물 건너갔다. 전쟁권한법에 따라 의회 승인 없이는 늦어도 5월 29일까지 철군해야 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초읽기에 몰린 것이다. 파괴된 에너지 시설을 복구하고 소비자 물가 안정에 필요한 시간까지 역산하면 5월이 종전 데드 라인이다.
이제 이란의 최대 무기는 드론이나 미사일이 아니다. 시간이다. 갈수록 글로벌 경제가 발작하고 미 내부의 정치적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런 점에서 1차 협상 결렬은 당연한 결과다. 단지 농축우라늄과 호르무즈 해협을 놓고 양쪽의 입장 차가 워낙 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란이 버티면 버틸수록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만큼 ‘침대 협상’은 불 보듯 뻔하다. 중국의 중재도 믿기 어렵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분석처럼 중국은 ‘적이 실수할 때는 절대 방해하지 말라’는 게 기본 노선이다. 미국의 힘이 약해질 것이란 판단 아래 뒤에서 웃고 있다.
미국이 막대한 희생을 각오하고 지상전에 돌입하지 않는 한 이란의 광인 작전을 무너뜨리기 쉽지 않다. 트럼프의 예고된 패배다. 그의 독선과 변덕에 대한 피로 현상으로 지지율은 33%로 주저앉았고,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두 쪽이 났다. 이번 전쟁은 트럼프의 소영웅주의와 모험주의가 촉발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재앙은 막아야 한다. 불법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가로막는 ‘막가파’식 이란이 핵무기까지 손에 쥐는 것은 악몽이다.
전쟁의 포연은 항상 미국 선거에 흔적을 남긴다. 이제 미 보수의 희망은 JD 밴스 부통령에게 모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백악관 지하 상황실 회의에 빠진 인물이고, 이번 전쟁을 가장 강력히 반대했다. 미국 역사상 이렇게 중요한 협상을 부통령이 주도한 사례도 없었다. 밴스가 2028년 대선 경쟁자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따돌리기 위해 이번 종전 협상에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인은 ‘입’이 아니라 ‘발’을 보라고 한다. 트럼프의 종잡기 힘든 발언보다 밴스가 어떤 카드를 쥐고 2차 협상 비행기를 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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