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의 Deep Read - 중동전쟁과 경제안보
한국경제, 외부 충격에 유독 체계적 위기 노정… ‘병목 노드’ 찾아 선제적 관리 필요
경제구조 전략적 재설계 당면과제… 에너지안보 최우선하며 전력기반 자립도 높여야
경제안보는 때로 국가 운명을 결정짓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특히 중동전쟁에서 보듯, 석유와 같은 특정 생산요소 하나가 막힐 때 국내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한국의 경우, 경제안보에 대한 이해와 전략적 접근이 시급하다.
한국에 경제안보는 외부 충격을 단순히 방어하는 것을 넘어, 외부 충격이 국내의 구조적 취약성을 타고 체계적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는 능력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경제안보의 핵심은 위기 시 상대가 우리의 공급망과 시스템을 무기화하지 못하도록 상호의존적 구조를 능동적으로 재설계하는 데 있다.
◇중동전쟁의 교훈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중동전쟁에서 직접 당사국이 아닌 나라 가운데 한국이 가장 타격이 크다고 밝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보고서는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첫째, 한국 경제의 취약성은 수입 의존 자체보다 병목의 집중에 있다는 것이다. 단지 유가 충격만이 아니라 특정 생산요소 하나가 막히면 산업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둘째, 평시에는 충분한 석유 비축량이라고 해도, 위기 국면에서는 소비량·정제처리능력·물류 차질을 반영했을 때 그 비축분으로 경제가 며칠이나 지탱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셋째, 중요한 것은 석유가 아니라 전체 경제 시스템이다. 26척의 선박이 묶이자 외환·금융·주식시장이 동시에 흔들렸다는 것은, 충격이 한 부문에 머물지 않고 연쇄적으로 번졌다는 뜻이다.
넷째, 물량이 필요할 때 한국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의 문제다. 원유시장의 속성상 정유설비, 계약, 선박, 보험 등 제반 문제로 인해 수입처를 쉽게 변경하기 어렵다. 더욱이 오늘날 국제질서의 성격상 위기 시 (이해 불일치 가능성이 있는 정유사·탱커사) 외국 지분과 운송관계망에서 제재, 외교 관계에 이르기까지 자율성을 제약할 수 있는 장애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동전쟁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생존을 위해 얼마나 정교한 경제안보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제규범에 따른 자유주의 질서가 와해된 세계에서, 또 어떤 변칙적 갈등이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개념의 확장
전통적 의미에서 경제안보는 타국이 경제 수단을 동원해 자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전술로부터 자국을 지키는 능력을 말한다. 20세기 말 글로벌 경제의 통합으로 높아진 국가 간 상호의존성은 경제안보를 단지 대외 충격을 견디는 방어에 머물지 않고, 전략적 차원으로 확장돼야 할 당위성을 제기한다.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전쟁을 경험하면서 경제안보는 대외 충격, 타국의 강압, 국제질서의 붕괴 속에서도 한 나라가 핵심 경제 기능을 유지하고, 정책 자율성을 지키며, 사회적 비용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게 됐다.
대외 충격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충격 그 자체보다 충격의 파급효과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팬데믹, 전쟁과 같은 비경제적 충격도 종국에는 경제적 영향력을 미치는 식으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같은 충격을 받아도 어떤 나라는 견디고 어떤 나라는 흔들린다. 이 같은 차이는 외부 충격 자체보다도 한 나라가 직면한 국내 경제의 취약한 구조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2023년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를 높게, 더 오래 유지한다’는 뒷북 금리 인상 캠페인 ‘Higher for longer’에 따른 한국은행발 금리 인상 충격은 빚에 의존한 경제활동을 마비시켰다.
외환위기는 선진국과 달리 신흥국에서는 진정되지 않고 은행위기나 외채위기로 오히려 그 위기가 확산되는 양상을 자주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이 그랬다.
◇바람직한 경제안보
경제안보는 위협·대상·생존이라는 세 축으로 정의된다. 단순히 외부 충격을 막아내는 방패를 넘어, 국가 경제구조를 재설계하는 전략적 과제가 됐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취약한 연결고리를 그대로 두는 것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핵심은 개방성은 유지하되 취약성은 걷어내고, 효율과 복원력 사이의 균형을 찾는 설계능력이다.
바람직한 경제안보 정책은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를 산업·거시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원전·재생에너지·전력망·저장장치 등 전력 기반의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이제 에너지는 단순히 비용 문제를 넘어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됐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고 주요 해상항로의 영향을 직접 받는 현실에서, 단순한 비축 확대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음, 공급망 정책의 초점을 산업 단위에서 핵심 ‘병목 노드’(Bottleneck Node)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자면, 생산부터 물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공급 중단을 유발하는 숨은 병목을 찾아내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오늘날 지정학적 충격은 무역장벽을 넘어 외환·금융시장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정학적 요인이 기존 외환·금융시장의 상관관계와 가격 형성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상황이다. 기존의 거시건전성 정책에 추가해, 통화 스와프 및 결제망 대체수단까지 포괄하는 다층적 금융 안전망을 재정비해야 한다.
◇통합적 국가운영체계
질서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국가 간 협력은 사라지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상호의존성, 즉 비독점적 외교전략이 전개되고 있다. 국가는 더는 단일 진영에 안주하지 않고, 안보·기술·에너지·시장에 따라 제휴를 재조합한다.
무역의 확대가 성장을 촉진한다면, 무역의 다변화는 경제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영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한 것은, 태평양 지역 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해 경제안보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데 있다. 한국도 기존의 자유무역협정 수준을 높이고, CPTPP와 같은 새로운 자유무역협정에 참여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경제안보의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부처별 분절적 품목 관리가 아니다. 국가 최고의사결정기구가 전략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소관 부처가 법·재정수단으로 집행하며, 민·관이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는 상시적 통합적 국가운영체계다. 위기 시 단일 지휘체계로 신속하게 전환돼야 한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 용어설명
‘Higher for longer’는 ‘금리를 더 높게, 더 오래 유지한다’는 통화정책의 기조. 주로 미국 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하를 늦추거나 동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때 동원하는 메시지.
‘병목 노드’즉 Bottleneck Node란 산업에서 전체 생산이나 공정 흐름을 막는 한계 지점을 말함. 즉 공정·장비·시간·생산요소·자원 등 특정 단계의 한계 때문에 전체 흐름이 제한되는 지점.
■ 세줄 요약
중동전쟁의 교훈: 경제안보는 국가 운명을 결정짓는 생존의 문제. 중동전쟁의 교훈은 석유 등 생산요소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정교한 경제안보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줌.
개념의 확장: 경제안보란 타국이 경제 수단을 동원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행태로부터 국익을 지키는 능력. 우리 입장에서 경제안보란 외부 충격이 국내 구조적 취약성을 타고 체계적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는 능력.
바람직한 경제안보: 한국은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전력 기반의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특히 생산에서 물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공급 중단을 유발하는 숨은 ‘병목’을 찾아내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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