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S로 이룬 ‘덕업일치’

 

△ 18만 구독자 보유 ‘쑨디’

K팝 아이돌 향한 철학적 게시글

160만 조회수 기록하며 큰 인기

 

△ 詩만 다루는 ‘포엠매거진’

도발적 문구로 2년간 카드 뉴스

굿즈 제작·오프라인 행사 진행

 

△ 클래식 전문 채널 ‘탱로그’

장난스레 올린 연주 영상 화제

세계적 연주자들이 먼저 알아봐

아이돌 덕후인 김모 씨는 오프라인 행사가 아닌 X를 찾는다. 그곳엔 나보다 더 열렬히, 그리고 맛깔나게 덕질을 하고 있는 ‘쑨디’가 있으니까. 시 덕후 이모 씨는 서점이 아닌 인스타그램 계정 ‘포엠매거진’을 찾는다. 떠먹여주듯 양안다 시인의 시집 한 권을 권하는 게시물이 보인다. “망한 사랑 시는 양안다부터 읽으실게요”라는 문구와 함께.

어느덧 ‘덕후들의 덕후’가 생겨나는 시대다. 한 명의 팬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들만의 스타이자 인플루언서로 자리 잡은 ‘성덕(성공한 덕후)’들이다. 과거에는 콘서트에서 운 좋게 가수와 악수 한 번 나누거나, 북토크 현장에서 작가와 셀카 한 장 찍는 것이 우리가 부러워 마지않던 ‘성덕’의 기준이었다. 플랫폼이 다변화하고 취향이 세분화된 지금은, 덕질이 스펙이 되고, 콘텐츠가 되고 10만 팔로어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성덕의 시대가 열렸다. “제발 현생(현실 인생) 좀 살아, 덕후야!”라는 핀잔에 이들은 당당히 되묻는다. “무슨 소리, 이게 제 현생인걸요?”

이 시대의 덕후들은 단순한 소비자에 머물지 않는다. 연예인 못지않은 팬덤은 기본. 유튜브, X, 인스타그램 등 자신의 취향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에서 ‘덕질’은 글과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된다.

그 중심에는 18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트위터리안 ‘쑨디’가 있다. 그룹 몬스타엑스를 비롯해 좋아하는 아이돌을 향한 감정을 숨김없이, 때로는 철학적으로 풀어낸 그의 글은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K팝의 존재 의의는 역시… 지친 어떤 여자가 퇴근길에 다시 삶의 용기를 얻었으니 이걸로 된 겁니다”와 같은 게시물은 약 16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아이돌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X라는 플랫폼 특성상 이름도, 나이도, 목소리도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쑨디는 “X는 비슷한 농도의 사람들을 만나고 구경할 수 있는 창구”라며 “타임라인을 잘 가꾸면 보고 싶은 내용 위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때로는 마이너함이 성공 요소가 되기도 한다. 오직 ‘시’만 다루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해 대박을 터뜨린 한국문학 독자들의 성지, ‘포엠매거진’의 배동훈 대표가 그렇다. “외계인 침공 시, 시 안 읽는 사람이 먼저 잡아먹힌다”는 발칙하고 도발적인 문구는 그의 작품이다. 배 대표는 “모두를 적당히 만족시키는 것보다 소수를 팬으로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포엠매거진이 10만 팔로어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시’라는 특수한 장르를 깊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3년간 시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연재한 그는 자신의 강점인 디자인과 브랜딩, 마케팅 스킬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무대로 인스타그램을 택했다. 콘텐츠 형태도 카드 뉴스로 바꿨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사업자 등록을 하고 굿즈 제작과 오프라인 행사까지 진행하며 ‘덕질이 현생’인 삶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권태영 씨는 구독자 15만 명을 훌쩍 넘긴 클래식 전문 유튜브 채널 ‘탱로그’를 운영 중이다. 그는 초등교사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미국에서 음악 교육을 위해 유학 중인 열렬한 클래식 애호가다. 장난스레 올린 ‘소나티네 대가처럼 치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으로 클래식 관련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입장이 조금 바뀌었다. 오히려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그가 하는 유튜브의 단골 시청자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첼리스트 양성원,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등 국내외 유명 클래식 연주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기회도 얻었다. 내가 열광하던 대상과 단둘이 만나고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덕후들이 말하는 ‘성공의 순간’일 것이다. 그는 “세계적인 연주자가 나를 언급해 주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기분이 든다”고 전했다.

김유진 기자, 신재우 기자
김유진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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