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두 연세대 명예교수
인구 970만 명의 헝가리 총선 결과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16년 집권이 막을 내렸다. 오르반은 공산정권에 저항한 운동권 출신으로 청년민주동맹을 결성해 민주화에 기여했고, 1998년부터 4년 집권한 후 2010년에는 우파 포퓰리스트로 변신해 지금까지 재집권했다.
그는 의회 다수 의석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이지만 권위주의가 가미된 혼합체제’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신문과 방송 등 주요 언론을 지배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은 재정적·법적 수단으로 압박했다. 선거법을 30회 이상 개정했으며,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폈다. 국가부채에도 복지 지출을 늘렸다. 이번 선거에서는 2자녀 이상 여성의 소득세 평생 감면을 공약했다.
헝가리 집권당의 참패 원인은 경제난이다. 국민소득은 유럽연합(EU) 평균의 절반을 겨우 넘고, 경제는 저성장 고물가의 덫에 빠졌다. 4년 전 총선을 앞두고 시행한 선심성 소득세 환급 조치가 25% 상당의 악성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3년 연속 EU 부패지수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헝가리에 배정된 180억 유로의 EU 지원금이 동결돼 있다. EU는 회원국의 법치에 중대한 위반이 있는 경우 예산 지급을 제한할 수 있다. 그리고 유럽 난민법 위반으로 유럽법원이 부과한 2억 유로의 벌금이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티서는 2020년에 생겨난 신생 정당이며, 당명은 존중(tisztelet)과 자유(szabadsag)의 첫 글자 조합이다. 2년 전 43세의 머저르 페테르가 아내였던 법무부 장관을 통해 알게 된 정권 부패 행위를 폭로함으로써 일약 반정부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후, 당 대표를 맡아 전국 정당으로 키웠다.
티서는 반부패 중도 우파 이념을 표방하며, 기독교와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머저르는 정치집회에서 늘 국기를 흔드는데, 오랜 외세 지배의 역사와 연관돼 있다. 헝가리는 오스만제국, 오스트리아, 나치독일, 소련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이런 점에서 머저르는 오르반과 이념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헝가리 총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여당을 지지하고, EU가 야당을 지지한 ‘국제 선거’였다. 오르반은 헝가리를 동과 서를 잇는 교량 국가로 규정하고, EU에 비판적인 국가와 협력했다. 대(對)러시아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해 2025년 석유·가스 수입의 90% 이상이 러시아산이다. 그의 반(反)이주민 정책은 트럼프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반면에 머저르는, 유럽 문명에 편입된 역사적 길을 따라야 한다며 EU와의 관계 정상화가 경제 회복의 열쇠라고 주장한다. 헝가리가 균형 외교에서 친유럽 외교로 바뀌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미국의 나토(NATO) 탈퇴 등 강대국의 충돌이 커질 수 있다.
헝가리 총선은 한국 정치에도 교훈을 준다. 정권이 바뀌면 언론 지배에 나서고,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면 파당적 입법을 하고, 선거를 앞두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해 그 피해는 국민이 받는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머슴이다. 따라서 국민은 정치인을 추종하고 열광할 게 아니라, 국민이 맡긴 권한을 청렴하게 잘 행사하는지 감시하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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