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 탈출 늑대 ‘늑구’ 수색 일주일

 

8일 대전 오월드 늑대 달아나

허술한 철조망·울타리 등 원인

2018년 퓨마 사건과 ‘판박이’

 

2023년엔 사자·침팬지 탈출도

한 사람 실수 아닌 시스템 문제

 

동물 생명 중시 기류 확산으로

사살도 쉽지 않아 탈출 장기화

지난 2018년 9월 18일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해 사살된 퓨마 사육장의 문이 열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9월 18일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해 사살된 퓨마 사육장의 문이 열려 있다. 연합뉴스

대전=김창희 · 과천=박성훈 · 부산=이승륜 · 고령=박천학 · 강릉=이성현 기자

지난 8일 오전 9시 30분, 대전 오월드 사파리. 평온해야 할 평일 오전의 공기는 “늑대가 탈출했다”는 다급한 무전과 함께 얼어붙었다. 27개월 된 수컷 늑대 ‘늑구’는 인간이 만든 울타리의 ‘느슨한 틈’을 비집고 나갔다. 늑대가 탈출했다는 소식에 재난 문자가 빗발쳤고, 경찰과 소방, 엽사 등이 투입된 ‘포획 작전’이 14일 현재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대전시민들은 8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했을 당시 대전 공공동물원 오월드에서 퓨마 ‘뽀롱이’가 열린 사육장 문을 통해 탈출했다가 결국 사살된 사건이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국가적 대사 속에도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대전 퓨마’였을 만큼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결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소집돼 사살명령이 하달되면서 뽀롱이는 사살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대전시민들은 다시 한번 동물 탈출 ‘데자뷔’에 직면해 있다. 왜 이런 일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것일까.

주요 동물 탈출 사건을 분석해보면, 대개 ‘설마’가 부른 ‘인재’로 볼 수 있다. 2013년 11월 24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는 시베리아호랑이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공격해 숨지게 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사육사 심모 씨가 먹이를 주러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이 사건은 기본 원칙인 맹수의 ‘동선 분리’와 ‘2인 1조 원칙’이 무너진 결과였다. 특히 사고 현장이 여우를 가두던 임시 사육장이어서 잠금장치가 부실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큰 충격을 줬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6년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의 원숭이 5마리 집단 탈출극이 있다. 비록 큰 피해 없이 포획됐으나, 이는 국내 동물원 안전 관리 시스템의 미비함을 처음으로 알린 신호탄이었다.

지난 8일 탈출한 뒤 13일 밤 대전 오월드 인근 야산에서 발견된 늑대 ‘늑구’의 모습. 강준수 씨 촬영 제공
지난 8일 탈출한 뒤 13일 밤 대전 오월드 인근 야산에서 발견된 늑대 ‘늑구’의 모습. 강준수 씨 촬영 제공

최근에는 탈출 사건이 더욱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2023년 8월 14일, 경북 고령의 한 사설 농장에서 20년 된 암사자 ‘사순이’가 탈출했다. 원인은 관리인이 청소 후 제대로 닫지 않은 ‘열린 뒷문’이었다. 사순이는 목장에서 불과 20m 떨어진 풀숲에서 발견됐지만, 관계 당국은 마취총의 약효 지연을 우려해 사살을 선택했다. 비슷한 시기 대구 달성공원에서는 침팬지 두 마리가 사육사를 밀치고 탈출해 관람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023년 1월 21일, 강원 강릉의 한 동물농장에서 생후 6개월 된 새끼 사자 2마리가 우리 틈을 통해 탈출했다. 다행히 인근 야산에서 배회하던 것을 농장 주인이 마취총으로 생포하며 인명 피해는 막았지만, 사육 시설의 허술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부산의 경우 맹수 탈출은 없었으나 2014년 부산 어린이대공원 내 ‘더 파크’ 개장 직후 산양 3마리가 울타리 부실로 탈출했고, 2024년 9월에는 꽃사슴 1마리가 이탈했다. 현재 운영이 중단된 이곳에는 사자, 호랑이, 표범 등 맹수류 2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부산시는 시설 인수를 앞두고 인력을 충원하며 안전 점검에 나서고 있으나,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 없이는 언제든 ‘야생동물 탈출’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사례는 더욱 참혹하다. 2011년 미국 오하이오주 제인스빌에서 발생한 ‘맹수 대탈출 사건’은 전 세계를 경악게 했다. 사설 동물원 주인이 고의로 벵골호랑이, 사자, 곰 등 맹수 50여 마리를 풀어주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하루아침에 도심은 전쟁터가 됐고, 경찰은 시민 안전을 위해 49마리의 맹수를 사살해야 했다. ‘사설 맹수 사육’이 개인의 일탈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 최악의 사례다.

자연재해도 동물원의 쇠창살을 무력화한다. 2015년 조지아 트빌리시에서는 폭우로 홍수가 나며 동물원이 침수됐고, 무너진 울타리를 통해 사자와 늑대 등 30여 마리가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직원 등 10명이 숨지고 시민 110만 명에게 외출 자제령이 내려졌다. 2022년 스웨덴 푸루비크 동물원에서는 침팬지 7마리가 탈출했다가 4마리가 사살되며 ‘과잉 대응’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2018년 9월 18일 오월드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 ‘뽀롱이’의 사진과 조화. 연합뉴스
지난 2018년 9월 18일 오월드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 ‘뽀롱이’의 사진과 조화.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한다. 먼저 느슨한 ‘사설 시설’의 관리 사각지대다. 고령 사자나 강릉 사자 사례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시설은 점검이 부실하고 안전장치가 취약하다. 주민들은 집 근처에 맹수가 사육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초기 대응이 늦어진다.

공공 동물원의 매뉴얼 실종과 관리자의 태만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퓨마와 사순이, 늑구 탈출의 결정적 원인은 모두 ‘열린 문’이나 느슨한 울타리 관리가 원인이었다. 특히 시건장치나 센서 장착 등 하드웨어 보완도 중요하지만, 동물원 관리 인력의 사소한 실수 등 ‘휴먼 에러’가 원인이 되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

공공기관인 대전도시공사가 운영하는 대전 오월드의 사례는 특히 뼈아프다. 8년 전 퓨마 사건 이후 시설 개선을 약속했지만, 이번에 늑대가 토사 유실로 생긴 울타리 아래 틈을 이용해 탈출하면서 관리 부실이 다시 지적됐다. 단순히 한 사육사의 실수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 자체가 느슨해져 있다는 방증이다.

또 사람의 안전 못지않게 동물의 생명도 중시하는 사회적 기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동물이 도심으로 진출하면 쉽게 사살로 해결하려 했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판이하다. 결국 ‘시민 안전’이라는 명분과 “자유를 찾아 나간 늑대를 왜 죽여야 하느냐”는 동물 생명권 존중 여론이 부딪치는 가운데 대전 늑대 탈출 사태도 장기화하는 상황이다.

동물원은 야생을 가둬 놓은 ‘불안한 평화’의 공간이다. 2026년 대전 보문산 일대를 헤매는 늑구의 사연은 8년 전 사살된 퓨마 뽀롱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악몽의 데자뷔를 끊어내는 길은 엄격한 관리 체계 구축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창희 기자, 박성훈 기자, 이승륜 기자, 박천학 기자, 이성현 기자
김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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