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서재

제목에 꿈이 들어간 책들을 떠올려 본다. 한여름 밤의 꿈, 내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기차의 꿈 등등.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님을 자각할 때, 상상의 힘을 빌려서라도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 필요할 때 우리는 꿈을 소환하게 되는 것 같다. 신미나 시인의 두 달간의 도쿄 체류기를 담은 책에도 ‘짧은 꿈’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두 달은 짧은 시간일까, 긴 시간일까. 본래 시간의 밀도는 마음의 성실도와 유관하지 않던가. 시인은 두 달간의 시간을 누구보다 충실히 겪은 모양이다. 짧은 꿈이라는 말 속에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시인이 도쿄에서 머문 레지던시는 다다미 여섯 장이 깔려 있는 작은 아파트로 1980년대에 지어졌다. 시인은 자신과 생년이 얼추 비슷한 이 공간에 우주선 ‘스페이스 다다’라는 이름을 붙이고 매일의 운행을 기록한다. “나는 혼자 잘 논다. 다산 정약용이 ‘국영시서(菊影詩序)’에서 국화를 책상에 두고 불빛을 비춰 보며 놀았던 것처럼, 나는 이런저런 정념을 쇠똥구리처럼 굴리며 논다.” 시인은 혼자 놀기의 달인이지만, 자신의 삶에 찾아온 시절 인연과 풍경들을 너르게 품는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불편한 구두를 신고 거닐던 골목골목이 점차 생활 공간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엿보는 일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 여행과 생활 사이, 극적인 사건은 없다. 그저 오늘 하루 누굴 만나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었는지에 대한 작은 기록들이다. 그런데 왜 문장을 읽는 내내 잔물결이 일듯 마음이 일렁이는 것일까.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토록 소소한 장면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일까.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매일 달라지는 시인의 자아 지수(指數)를 만나는 일이다. 시인은 시를 쓸 때는 신미나라는 이름을, 그림을 그릴 때는 싱고라는 필명을 사용해 왔다. 시인 자아가 우세할 때는 시인력이, 일상 자아가 우세할 때는 싱고력이 발동되며 도합 100을 이룬다. 챕터마다 수치가 달리 기록되는데 ‘시인력 5, 싱고력 95’인 날도 있고, ‘시인력 방전, 싱고력 완충’인 날도 있다.

독서에도 제철이 있으려나. 연중무휴 계절을 타지 않는 일이 독서라고는 하지만 그 계절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있는 것 같다. 시인과 함께 봄날을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나도 따라 기록하고 싶어진다. 이 짧은 봄날을. 오늘 나는 무엇으로 살았나. 내 안의 서로 다른 내가 고개를 든다.

안희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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