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편안함은 긴장감 줄여주기에
아주 작은 불편도 거부하게 해
익숙한 사람 쉽게 대하다 보면
관계 망가지면서 스스로 고립
계속 편안하게 살면 뇌도 퇴화
적절한 불편함 느끼며 살아야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 집안을 정리하는 것, 특히 버릴 것을 골라내는 과정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걸 버려야 하나 그대로 두어도 되지 않으려나, 아까운데, 언젠가 쓸모 있을 건데 등등 내적 갈등이 만만찮다. 특히 욕실까지 모든 벽이 페인트칠로 되어 있는 데다가 유리 창문 안에 창호지 창문이 하나 더 달린 이 집은 정말 불편하다.
설계하신 건축가 선생님의 트레이드마크인 이 창호지 창문은 조금만 건드려도 그대로 구멍이 나서 금세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되어 버린다. 언젠가 그 건축가 선생님을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니 선생님, 왜 이렇게 집을 만드셨어요? 살기가 정말 힘드네요”라고 불만을 털어놓자, “집이 너무 편하면 안 되지, 집은 좀 불편해야 해”라고 하셨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편한 게 집이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그게 집인가 싶었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 불편함의 역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이사 올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정리도 하고 가꾸기도 하면서 지인들도 초대하고 그야말로 집다운 집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 쫓기다 보니 집을 정리하고 예쁘게 꾸미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만 간다. 좀 어질러지면 어때, 나만 편하면 되지, 타인들을 집에 안 들이면 되는 거라는 생각에 점차 물건들은 여기저기 쌓여 가고 그런 편안함에 적응해 버린다.
인간은 당연히 불편함은 기피하고 편안함을 선호한다. 환경도, 업무도 사람과의 관계도, 모든 것에서 불편한 것은 피하려 한다. 익숙한 게 좋다면서 편안함에 점점 젖어드는 사이 한쪽에서는 나태함이라는 병이 서서히 키워진다. 편안함은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에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아주 작은 불편함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정리는 물론이고 처리해야 할 업무, 접해야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등을 미룰 수 있다면 미루어 버린다. 당장은 편하지만 결국 고립되어 자신만의 세계 안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역력하다.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외모도 신경 쓰이고 무슨 말을 할지 스스로 긴장하게 된다. 사실 이런 긴장이 싫어서 우리는 그냥 편한 사람, 익숙한 사람이 좋다고 생각한다. 편하니까 아무렇게나 입고 나가도 이해할 것이고, 무슨 말을 하든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상대가 언짢아할 수 있는 말도 흘리고, 괜한 자랑질, 타인의 뒷담화 등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살짝 자책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 사이인데 이해하겠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떠들어 대는 이런 나태함 아니 무례함에 이제 그들의 인내가 한계에 이른다. 결국, 점차 그들은 멀어져가고 언젠가 스스로 고립되어 가는 것이다.
불편함을 회피하고 안락함만 좇는 것은 인간을 나태하게 만든다. 필립 브릭먼과 도널드 캠벨이 제시한 ‘편안함의 역설’(The Paradox of Comfort)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더 취약해지고 불행해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편안함의 수준이 높아지면 그것이 곧 ‘새로운 기준점’이 된다. 예전에는 감사했던 편안함이 당연함이 되고, 이젠 아주 작은 불편함에도 이전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되는 ‘쾌락의 쳇바퀴’(Hedonic Adaptation)에 갇히게 된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약해지듯이 관계를 맺는 기술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과도하게 긴장하게 된다거나 예민하게 된다. 작은 타인의 반응에도 쉽게 상처받거나 과하게 반응하게 되어, 다시 혼자를 선택하면서 편안해 하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런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만 머물면 뇌는 새로운 신경 연결을 만들지 않으면서 퇴화해 간다. 반면, 낯설고 불편한 상황에 직면할 때 평소에 소통하지 않던 뉴런들이 강한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시냅스의 연결 강도가 높아지고, 새로운 신경 회로가 생성된다. ‘불편함’은 뇌에게 이 정보는 생존에 중요하니 새로운 길을 만들라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하여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 활발해진다.
또한, 학습 과정에서의 불편함이 오히려 기억력을 높인다는 사실도 연구되었다. 정보를 너무 쉽게 얻을 때보다 약간의 불편함을 겪으면서 얻게 되면 뇌는 더 깊이 정보를 처리하여 장기기억으로 더 잘 저장하였다. 손으로 직접 쓴다거나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이리저리 고민하면서 분석하는 경우, 이런 인지적 마찰이 얻은 정보를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편안함으로 노력이 거의 들지 않는 상황에서 뇌는 이를 ‘인지적 편안함’(Cognitive Ease)으로 인식하나 상황이 불편하고 생소하면 이를 ‘인지적 긴장’(Cognitive Strain) 상태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좀 더 집중하고, 직관이 아니라 비판적 분석을 하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이다.
적절한 수준의 불편함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강력한 긍정적 자극제임을 기억하고 감수하되, 지나친 편안함은 게으르게 하므로 경계할 일이다. 그 편안함의 독성이 우리의 뇌를 서서히 잠식하면서 기억력을 떨어뜨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차단해 간다는 것을 자각하자. 그래 기꺼이 불편해 보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