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형 정치부 차장

‘국민주권 정부’는 다를 줄 알았다. 과거의 레거시에서 정체성을 찾기보다 미래 지향적 정부일 것이라 기대한 국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 행보를 보면,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정보의 본질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정보는 완전무결하지 않다. 틀릴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며 수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하나,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시점에서 확보된 사실과 판단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그것이 정보기관의 존재 이유다. 정치적 유불리나 권력의 의중에 따라 정보의 의미가 달라지는 순간, 그것은 더는 정보가 아니라 해석이고, 나아가 왜곡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이 원칙이 무너졌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군사 행동 명분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전쟁 이후 해당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상원 정보위원회와 별도 조사위원회는 정보의 출처 신뢰성 검증이 미흡했고, 상반된 분석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는 단순한 분석 실패에 그치지 않았다. 중동 정세를 장기간 불안정에 빠뜨렸고, 국제질서 전반에 적지 않은 충격을 남겼다. 정보기관의 판단이 세계적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사례였다.

국내에서도 정보기관이 흔들린 사례는 반복됐다. 원세훈 전 원장 시절의 국정원 댓글 사건은 정보기관이 정치 과정에 개입한 것이 인정됐다. 국정원 직원과 외곽 조직이 온라인상에서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벌였고, 사법부는 이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판단해 유죄를 확정했다. 정보기관이 사실 전달 기관의 역할을 벗어난 순간이었다.

최근 이종석 국정원장의 발언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북한 측 창구로 지목된 리호남과 관련한 설명에서 기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형성된 인식과 다른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서다. 과거 수사에서는 리호남이 대북송금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됐지만, 최근 발언은 재해석 여지를 남겼다. 만약 리호남의 존재가 사법적으로 문제가 됐다면 이는 재판 전 과정을 흔들 사안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를 시급히 수습하기보단 국회 정보위원회라는 일종의 방어막 아래서 사법부 판단을 뒤집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런 정보기관이 국가안보를 책임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지점에서 국정원 원훈석 문구를 떠올리게 된다. ‘정보는 국력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정원은 국력을 뒷받침할 만큼 안정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나. 정보의 해석이 시점에 따라 달라지고, 그 의미가 뒤늦게 수정되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국력의 기반이 되기 어렵다. 정보는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그 원칙이 지켜질 때만 정보는 국력이 된다.

정선형 정치부 차장
정선형 정치부 차장
정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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