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성인 60% 1년 책 1권 안 읽어
독서율 추락 속도 글로벌 선두
문화 추경 지원에 독서는 제외
한국문학의 해외 폭발적 반응
국내 독자 기반 없인 사상누각
새로운 도전적 읽기 정책 시급
최근 발표된 ‘2025년 국민 독서율’ 결과는 아무리 곱씹어도 충격적이다. 만 19세 이상 성인 5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지난 1년 동안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을 합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비율이 38.5%에 그쳤다. 성인 10명 중 6명 이상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다. 독서량은 평균 2.4권으로 채 세 권을 넘지 못했다. 1994년 성인 독서율이 86.8%였으니 한 세대 만에 독자 비율이 절반 이상 사라진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현상에 대한 사회적 무감각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독서율 역대 최저’는 주요 뉴스로 다뤄지곤 했지만, 이번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디지털과 유튜브, 인공지능(AI) 시대에 독서율 하락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독서율 하락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국가별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2025년 기준 프랑스에서 1년에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은 80%를 넘었다. 미국과 영국도 60% 안팎, 캐나다는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홍수 속에서 책의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세계적 추세지만 우리의 추락 속도와 저점은 글로벌 ‘최선두’이다. 디지털 강국이자 유행과 변화에 민감하고, 모두가 바쁜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책에서 가장 빨리, 가장 멀리 떨어져 나가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우리 책에 대한 해외 반응은 뜨겁다. K콘텐츠 열풍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맞물려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 수요는 폭발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을 받은 책 해외 판매량은 2024년 한 해 동안 약 120만 부로, 전년도 52만 부에서 130% 이상 증가했다. 펭귄 랜덤하우스, 아셰트 같은 메이저 출판사도 한국 문학 출간 경쟁에 뛰어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K북 수출을 최우선 출판 정책으로 두고 연간 10억 원씩 5년간 투입해 100종 수출이 목표인 ‘K북 글로벌 100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독자가 빠르게 사라지는 나라의 책 수출은 과연 지속 가능할까. 모든 콘텐츠는 국내 수요가 단단해야 글로벌로 뻗어갈 수 있지만, 책은 더더욱 그렇다. K팝·드라마·영화는 언어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글로벌 레이블·넷플릭스 같은 OTT를 통해 국내 시장을 건너뛰는 전략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국어가 기본인 문학을 포함한 책은 그렇지 않다. 국내 독자 없는 K북 수출은 사상누각이다.
한국 사회는 늘 독서를 강조해왔다. “국민의 지적 능력 향상과 건전한 정서 함양, 평생교육의 바탕 마련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독서문화진흥법을 만들고, 문체부는 5년마다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실제 독서 정책은 기존 사업과 행사를 되풀이하는 보여주기식 ‘정책적 무기력증’에 빠져 뒷전으로 밀려났다. 몇몇 예산 편성을 보면 이 같은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지난해 2차 추가경정예산에서 정부는 문화 활성화를 위해 영화·공연·전시·스포츠·관광 등 5개 분야에 778억 원 규모의 할인 쿠폰 780만 장을 뿌렸다. 올해 ‘전쟁 추경’에서도 영화·공연·숙박·휴가 할인권에만 586억 원을 쏟았다. 그러나 책은 보이지 않는다. 청년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 패스 역시 현재 공연·전시·영화 관람에만 쓸 수 있다. 국민 혈세로 만든 할인 쿠폰이 문화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책이 빠진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요즘 ‘청소년 문해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독서율 38.5%인 성인의 문해력은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현대 성인에게 필요한 문해력은 비판 문해력과 AI 문해력이다. 비판 문해력은 텍스트를 그대로 믿지 않고 구조를 분석·평가·해석하는 힘이며, AI 문해력은 AI가 내놓은 데이터를 판단하고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는 감각이다. 디지털 콘텐츠와 AI가 우리 뇌를 ‘훑어보기’와 ‘즉각 보상’에 최적화된 모드로 만들어 긴 글을 따라가는 인지적 인내심을 사라지게 한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모든 학자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가장 확실한 해독제는 긴 글을 깊게 읽는 습관이다. AI가 모든 정보를 요약해 주는 시대, 한 권을 끝까지 깊게 읽어내는 능력은 개인과 사회 모두의 중요한 자산이다. 독서를 ‘늙은 말’처럼 밀쳐두지 않고 프레임을 대전환해 도전적이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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