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참먹(眞墨)은 삼가 잘 받았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편지를 받은 후 해가 바뀌었습니다/오로지 새해를 맞아 복이 더하길 빕니다.’(俯惠眞墨 謹領深荷/信后歲改/唯冀迓新增福)
편지를 쓴 이해조(李海朝·1660∼1711)는 1702년 알성문과에 급제해 응교, 부교리, 집의, 대제학,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공조·예조판서를 지낸 이일상(李一相)이 그의 부친이다. 이일상은 조부 월사 이정구, 부친 백주 이명한과 더불어 ‘연안 이씨 3대 대제학’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해조 또한 대제학에 오르며 4대째 그 직을 이었다. 조선 시대에 3대 대제학의 영예를 누린 가문으로는 ‘광산 김씨’, ‘달성 서씨’, ‘전주 이씨’ 등이 있지만, 4대까지 계승한 집안은 연안 이씨가 유일하다.
편지에 따르면, 이해조는 관찰사로 재임 중인 인물로부터 새해 선물로 ‘참먹(眞墨)’을 받았다. 참먹은 말 그대로 ‘최상품의 진짜 먹’을 뜻한다. 기름을 태운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 찧고 반죽해 만든 유연먹(油煙墨)이 이에 해당한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유연먹에는 주로 오동씨기름이 사용됐다. 고려 중기의 시인 이규보는 그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천금의 나묵(螺墨)이 사향 냄새 내뿜네(千金螺墨噴香麝)”라는 구절을 남겼다. 나묵은 전복 껍질 가루를 섞어 만든 먹이다. 사향이나 전복 껍데기 가루 등을 첨가해 만든 참먹은 왕실의 하사품이나 명문가의 가보로 대를 이어 전해지기도 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명필일수록 문방사우에 심하게 집착했다. 추사 김정희는 중국에서 제작된 ‘당먹(唐墨)’을 주로 썼다. ‘세한도’를 선물 받은 우선 이상적 등 제자들이 연행 길에 고가에 구입해 추사에게 가져온 당먹은 유연묵 중 최고로 손꼽혔다.
추사는 아우에게 보낸 편지에 ‘가져온 약간의 당먹을 모두 써버려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라며, 당먹이 부족해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처지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시에서 ‘사람이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 사람을 단련시킨다(非人磨墨 墨磨人)’라는 유명한글을 남겼다. 먹을 가는 행위 자체가 마음을 닦는 정신 수양의 과정이라는 뜻일 것이다.
추사는 이런 마음으로 먹을 갈아 평생 벼루 10개에 구멍을 냈다. 그는 평생지기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내 글씨는 비록 내세울 것이 못 되나, 70년 동안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1000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네(吾書雖不足言 七十年 磨穿十硏 禿盡千毫).’
고문헌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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