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지난 2002년 9월 26일, 뉴욕타임스 독자란에 이라크와의 전쟁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짧고 간략한 광고 하나가 실렸다. 하지만 그 무게는 절대 만만치 않았다. 미국 국제정치학계를 대표하는 33인의 교수가 연명으로 냈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름이 없을 정도로 당대 최고 학자들이었다. 이라크에 지상군을 투입한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정책을 6가지 이유로 조목조목 반박했는데, 오늘날 미·이란 전쟁과 유사한 내용만 보면 이렇다.
우선,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미 국익에 절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전쟁은 이기겠지만, 주변국에 대한 도발까지 막을 순 없을뿐더러 종전 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경고한 것이다. 과연 사담 후세인은 유전에 불까지 지르며 저항했고, 미군은 아직도 이라크에 머물러 있다. 프랑스는 대놓고 전쟁에 반대했고, 이에 격분한 미국 시민은 즐겨 먹는 프렌치프라이를 프리덤(freedom)프라이로 바꿔 부르면서까지 신경전을 폈었다. 주한미군의 일부가 이라크로 차출돼 그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그로부터 24년이 돼 가는 지금, 미국은 이란과 전쟁 중이다. 데자뷔인가. 이란은 이미 주변국 유전 시설을 공격한 바 있다. 프랑스는 이번에도 대놓고 반대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일 연세대 특강에서 ‘미국의 예측 불가능성’을 언급하며 민주주의 국가 간의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전통 우방인 영국도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 계획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이번에도 주한미군의 전력 일부가 재배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쟁을 할 때는 얻을 것과 잃을 것, 상대의 반응을 몇 수 앞까지 내다본 플랜 B와 C까지 있어야 하는데, 이번엔 그게 보이지 않는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철저한 내부 봉기 차단, 주변국 유전 시설 폭격에 이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까지 미리 읽고 효과적으로 대응한 흔적은 찾기 힘들다. 플랜 B, C는커녕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며 미국 대통령의 입만 바라봐야 하는 전쟁은 처음 본다.
급기야 지난 17일 마크롱 대통령이 주창하던 민주주의 국가 간의 연대가 현실화했다.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가 주도한 ‘호르무즈 해협 해상 항행의 자유 이니셔티브’ 정상회의가 열린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나라들, 미국에 비협조적이던 나라들이 모여 ‘항행의 자유’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기뢰 제거를 위해 다국적 방어군을 창설하겠다는 의장성명도 나왔다. 실현 가능성은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우리나라도 회의에 참석했고 다국적군에도 참여키로 했다.
요즘 국내 증시가 건설사에 주목하는 건 2003년처럼 전후 복구사업 참여 희망 때문이다. 전쟁만 끝나면 자동차와 화장품 등 소비시장도 개척할 수 있고, 석유화학 산업엔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리스크 회피이다. 무엇보다, 북한과 대치 중인 만큼 동맹 미국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행동하는 최고지도자의 생각도 읽어야 하고, 국제 유가가 폭등하는 게 대통령 탓이라는 미국 유권자들의 표심도 면밀히 관찰해야 예측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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