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진아의 Deep Read - 與 주도 개헌안 문제점
선진국 전문에선 ‘사건’의 나열 안 보여… 권력구조 변화·기본권 강화 담는 게 우선
與, 野와 협치도 국민의사 수렴도 없이 추진… 개헌 정당성 - 보편적 태도 무너뜨려
최근 새 헌법개정안이 범여권 국회의원 187명에 의해 발의됐다. 개헌안 발의정족수인 국회의원 재적 반수를 훌쩍 넘겼지만,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거대 여권이 추진하는 개헌은 절차는 물론, 그 내용에도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시키고 있다. 이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 여권은 오는 5월 7일 개헌안의 본회의 의결을 추진한다.
◇개헌과 국민의 기대
이번 개헌이 성사된다면 1987년 제9차 개헌 이후 39년 만의 개헌이 된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제9차 개헌 때까지 걸린 시간과 같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1987년 이전의 39년과 이후 39년의 변화는 압도적으로 후자 쪽이 크다. 이 세월 동안 축적된 개헌 요소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2017년과 2018년에도 민주당 계열 정당 주도의 개헌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봇물 터지듯 분출된 개헌 요구를 수렴하지 못했고, 2017년의 경우 제19대 ‘대선 블랙홀’이 ‘개헌 블랙홀’을 완전히 삼켜버림으로써 개헌이 좌절된 경험을 했다. 2018년 당시 문재인 정권의 일방적 개헌안 발의는 필연적으로 야당의 반대를 불렀고, 이후에도 여야 협의 추진이라는 노력 자체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개헌의 진정성이 문제로 부상했었다.
이후 모든 개헌 사항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대신에 점진적·단계적인 개헌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번 개헌안의 내용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새 헌법에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 요소는 ①2017∼2018년의 개헌 열기를 촉발했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 즉 권력구조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 ②제9차 개헌 이후 지금까지 지체돼온 국민 기본권 보장 확대·강화 ③저출산·고령화 시대 대응 ④지역 소멸에 따른 지방분권 강화 ⑤AI 혁명과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무한경쟁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 구축 등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여권이 추진하는 새 개헌안에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 여권이 지금 마련 중인 개헌안은 ①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삽입하고 ②대통령의 계엄 발동·선포 요건을 강화하며 ③지역균형발전을 더욱 강조한다는 것 등 세 가지이다.
◇내용의 문제점
이 같은 제10차 개헌안 내용은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라는 국민적 요구를 완전히 비껴간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과 함께 부마민주항쟁을 삽입함으로써 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영·호남의 균형을 꾀하려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적절치 않다. 그렇게 따지면 전국적으로 모든 국민이 참여했던 1987년 민주화운동이 빠질 이유가 궁색해진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도 있다. 역사적 사건들을 헌법 전문에 넣어야 한다면 앞으로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헌법을 뜯어고쳐야 한다. 성문헌법을 채택한 미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헌법 전문에 역사적 사건을 나열한 사례가 없다.
둘째, 12·3비상계엄에 놀란 국민에게 계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실질로 들어가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계엄 선포 이후 48시간 이내에 국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계엄의 효력을 잃는다는 것은, 국회가 소집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계엄 선포조차 실효성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남침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됐고, 따라서 당시에는 계엄 선포를 위해 국회를 소집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현대전의 성격상 전후방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국회가 소집될 수 없을 정도의 긴박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권이 추진하는 개헌안은 계엄이라는 국가긴급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셋째, 이런 문제점 때문에 개헌 전자투표를 대안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전자투표가 폭넓게 이용되지 못하는 것은 해킹이나 대리투표, 결과 조작의 위험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쟁이라는 긴급 상황이 발생하거나 인터넷망이 붕괴되는 위험 상황이 일어나면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넷째, 이 같은 현안들을 젖혀놓고 이미 헌법에 규정돼 있는 지역균형발전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이 그렇게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일까.
◇절차상의 문제점
제10차 개헌안은 이 같은 내용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절차상의 정당성도 심히 결여돼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전 대통령 개헌 추진의 실패에서 배우지도 못했고, 야당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개헌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게을렀다. 문 정권의 개헌 추진 당시는 최소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려는 절차라도 있었지만, 이번 개헌안은 발의 전 국민 의사를 수렴하고자 하는 그 어떤 절차도 밟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헌법 개정 추진은 여야 간 협치도,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국민 참여 과정도 없는 개헌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제1야당인 국민의힘 의원 중 10여 명만 빼오면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계산하는 중이다. 비민주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1987체제 이전 군사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의원 빼오기 등 편법적인 의사 진행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날치기 통과 입법도 많았다. 심지어 인위적인 정계개편도 추진됐다.
이런 행태들은 1987체제로 민주화가 정착한 이후엔 점차 사라졌고, 정상적인 민주적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이 국민 모두에 공유됐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의원 빼오기 같은 행태가 자행된다면 이는 민주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도덕적 기준과 충돌할 수 있다고 보는 ‘현대판 마키아벨리즘’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법률 개정과는 달리 헌법 개정의 경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가 질서와 최고 규범을 만드는 과정에 여야 간, 그리고 국민과의 폭넓은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세계 대다수 국가 헌법 제·개정의 보편적 태도이기도 하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개헌의 정당성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 용어설명
‘1987체제’란 그해 6월 민주화운동 이후 6·29선언과 제9차 개헌을 통해 도입된 대통령직선제로 구성된 현행 헌법체제.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승자독식 등 논란으로 개헌 논의가 이어져 옴.
‘헌법 전문’에는 헌법 제정의 목적, 헌법의 지도이념과 원리 등이 규정돼. 본문과 마찬가지로 재판 규범성이 인정됨. 성문헌법을 채택한 선진국에서 전문에 역사적 사례를 나열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 세줄 요약
개헌과 국민의 기대: 제10차 개헌이 성사된다면 1987년 제9차 개헌 이후 39년 만의 개헌임. 국민이 이번 개헌에 기대하는 것은 권력구조의 변화, 국민기본권 보장 확대 등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는 것.
내용의 문제점: 여권이 추진하는 제10차 개헌안 내용은 이 같은 국민적 요구를 완전히 비껴간 것으로 평가돼. 특히 미국·프랑스·독일 등 성문헌법을 채택하는 선진국의 헌법 전문에는 역사적 사건이 나열되지 않아.
절차상의 문제점: 이번 헌법 개정은 여야 협치도, 국민 참여 과정도 없이 진행 중. 국가 질서와 최고 규범을 만드는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헌법 제·개정의 정당성과 보편적 태도를 무너뜨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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