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합니다 - 벚꽃 진 자리에서 생각하는 우리네 삶

벚꽃이 진 자리는 끝이 아니라, 고통을 지나 행복을 이어가는 자리이다.   자료사진
벚꽃이 진 자리는 끝이 아니라, 고통을 지나 행복을 이어가는 자리이다. 자료사진

벚나무는 견디기 힘든 겨울을 나목(裸木)으로 버티고, 강풍 속에서도 묵묵히 견디며 마침내 꽃을 피워 고통을 이겨낸 기쁨을 맞이했다. 역경 끝에 얻어진 행복이라 그 누구도 언짢아하지 않는다.

기나긴 겨울의 고통에 비하면 일주일 정도의 행복은 야박하기도 하다. 행복이란 한곳에 몰려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다른 생명처럼 잎이 나고 봉오리를 맺고 꽃이 피면 애절함을 좀 덜 수 있어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벚꽃은 완성되지 못한 행복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후에 더한 행복이 다가올지, 혹한 겨울이 한 번 더 올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벚나무는 완성되지 않은 행복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이 벚나무는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는 듯하다. 그 많은 꽃을 피우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저장해야 할 것인데, 그 어려운 고통의 시절에도 세파와 싸우면서 꽃을 피울 에너지를 저장해 왔다는 것 아니겠는가.

벚꽃은 행복을 매달기 위하여 그 고통의 세월을 빈 몸으로 투쟁해 왔다. 우리는 여태껏 희망으로 키워온 열매들을 피해 갈 수도 있었을 광풍(狂風)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벚나무가 맨몸으로 막아 내던 광풍을 우리 인간은 멍하게 바라보며 되찾을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다. 잎을 키워 열매를 보호하며 소리 없이 다음을 준비하는 벚나무와 달리 겉으로 소리 높여 떠들면서도 광풍이 어떻게 오는지 생각지도 않는 인간들. 그리고 광풍이 오면 뭐하고 있다가 광풍이 오는지도 몰랐느냐며 서로를 헐뜯는,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인 것 같다.

벚꽃이 진 자리에 겨울 속에서 뒤틀어진 세월호가 맺힌다. 행복이 맺혀야 할 자리에 자리 잡은 저 세월은 사람이 어떻게 감내함으로써 행복으로 바꾸어 맺히게 할 수 있을까. 그저 세월이 약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인가.

우리는 숱하게 광풍을 맞고서도 그때의 아픔만 남기고 사회적 질서를 바로잡는 데에는 아주 무디게 대응해 왔다. 사람의 생명보다 앞서는 가치들에 의해 아이들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떨어져 나간 열매들의 부르짖음, 심장을 파고드는 통한의 고통 소리, 다 쉬지 못한 숨으로 부르는 목소리, 누가 귀를 막고 심장을 닫아 들려오는 이 소리를 비켜 갈 것인가. 지금도 들리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저 광풍.

완성되지 못한 행복의 지나감은 다음에 다가올 잎의 향연으로 이어지며, 달콤한 행복을 품은 채 그토록 바라왔던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잎의 보살핌과 바람의 자장가 속에서 행복을 익혀 간다. 그리고 그 결실의 대가로 나그네에게 편안한 그늘을 내어주며, 행복을 찾으러 다니는 모든 생명에게 쉼과 여유를 선사한다.

벚꽃은 꽃이 진 자리를 그렇게도 아름다움으로 채우는데, 우리 인간들은 왜 그다지도 목마르게 살까. 광풍은 언제라도 불어올 수 있는 것. 우리는 언제쯤이나 자신의 자리를 지켜 광풍을 끝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벚꽃은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었고,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더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다.

겨울은 다시 오겠지만, 고통의 세월을 견디며 에너지를 저장한 벚나무처럼, 우리도 벚꽃이 진 자리,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되는 봄을,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아이들의 미소를 매년 다시 꽃피울 수 있으면 한다.

김종덕(전남대 명예교수·약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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