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식물학’, 183×228㎝, 유화, 2024.
황주리 ‘식물학’, 183×228㎝, 유화, 2024.

“인생은 갖가지 무늬의 페르시아 양탄자일 뿐이야.” 서머싯 몸(S. Maugham)의 ‘인간의 굴레’에서 크론쇼 노인이 한 말이다. 인간의 실존을 냉소적이면서도 심미적으로 비유한 말 같다. 밑줄까지 치면서 정독한 문학가를 꼽자면 단연 으뜸의 작가다. 그의 작품들에는 너무도 많은 ‘나’가 등장하고 있어서다.

황주리 작가의 그림들, 특히 ‘식물학’ 연작들을 보다 보면 몸의 작품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소감을 가진다. 사람의 내면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며 삶을 성찰하고 있는 대목에서 많이 닮은 느낌이다. 물론 몸의 꺼칠한 시각과 달리 섬세한 감수성으로 삶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에게 삶은 옴니버스 연속극이다.

선인장 실루엣 속에 담긴 희로애락의 일러스트도 읽는 묘미가 있다. 그 배경들엔 카펫 텍스처처럼 깔린 난수표 같은 기호로 무성하다. 판독은 할 수 없지만, 암시는 손에 잡힐 듯하다. 정보나 기호의 바다, 이 또한 실존적 굴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꽃과 열매를 맺는 생성적 존재라는 점 아닐까.

이재언 미술평론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