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20일 메르세데스-벤츠와 10조 원 규모의 하이니켈 NCM(니켈·코발트·망간) 각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가뭄 끝 단비 같은 소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벤츠에 원통형 배터리를 대량 공급하는 가운데, 삼성SDI가 BMW·아우디에 이어 벤츠까지 프리미엄 완성차 ‘빅3’ 모두 고객사로 끌어안은 것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돌파의 전략적 승부수가 통하면서 두 회사 주가는 21일 오전 9% 가까이 폭등했다. 반도체주 강세까지 겹치면서, 코스피는 장중 6360을 돌파하는 등 기존의 장중 최고 기록(지난 2월 27일 6347)도 경신했다.

지난 3년간 전기차 시장은 혹독했다. 보조금 축소와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수요가 급감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비용 절감을 앞세워 중국산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 이동했고, 한국의 고성능 NCM 배터리는 설 자리를 잃는 듯 했다. ‘죽음의 골짜기’로 불릴 정도였다. 뜻밖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전 계기로 작용했다. 이란 사태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기차 수요를 다시 끌어올린 것이다. 올해 1분기 유럽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약 30% 급증했다. 내연기관의 본산인 독일에서 전기차 판매가 휘발유차를 넘어선 점은 상징적 변화다.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도 균열이 생겼다. 그간 유럽 배터리 시장은 CATL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역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한 유럽산업가속화법(IAA)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확보한 K배터리에 기회의 문이 열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완성차 업계의 인식 전환이다. 이제 누구나 생산할 수 있는 저가형 LFP 배터리는 ‘레드오션’에 진입했다. 반면, 벤츠 등 ‘빅3’는 고성능 배터리가 수익성 방어에 유리하다고 보기 시작했다. 완충 시간 10분에 최장 주행거리 1000㎞의 독보적 K배터리 기술이 전기차 약점의 해결사로 떠올랐다. 나노 코팅과 고성능 분리막을 적용한 열폭주 방지 기술도 해외 업체들이 넘보지 못하는 초격차 영역이다. 이제 K배터리가 재도약의 분기점에 섰다. 압도적 기술력으로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시장을 선점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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