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안 인터뷰 - 최정일 한국경영학회 회장
전쟁·관세·고환율 등 복합적 악재… 전례 없이 불확실성 심화
유가·운송·환율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충격… 리스크 관리 필수
트럼프 보호무역 확대 기조 속 기존 수출중심 모델 한계 부딪혀
정책·에너지·제재 가능성까지 점검 ‘지정학 경영’ 상시화해야
정부는 가격통제보다 세제·금융 지원 등 시장안정 집중 바람직
사람들은 AI 시대에 ‘설계자형 리더십’ CEO 원해
‘경영 불확실성.’ 재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이 단어는 매년 반복되는 표현이지만,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인식이 크다. 고환율·고물가·내수침체 속에서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발 관세 폭탄의 직격탄을 맞았던 국내 산업이 올해 초엔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충격파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 내고 있는 탓이다. 아울러 인공지능(AI) 열풍을 넘어 피지컬 AI로 이어지는 첨단기술의 급속한 발전도 산업 구조 자체의 대변혁을 예고하는 데다, 국내 내부적으로는 상법과 노란봉투법 등의 기업 규제들이 기업들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경영 환경으로 내몰고 있다. 한 치 앞도 예단하기 어려운 국내 경영 환경의 해법을 찾아보기 위해 국내 경영학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학회 신임 회장을 만나 해법을 들어 봤다.
최정일 한국경영학회 71기 회장은 “이제 CEO들은 시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 정치, 에너지, 안보를 함께 읽어야 한다”며 “앞으로는 통상, 환율, 안보, 제재, 에너지 같은 비경제적 변수까지 함께 읽는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우선 현안인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기업 대응법부터 물었다.
― 중동 분쟁으로 인한 유가 불안과 물류 대란이 산업계의 비용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유가만 오른 문제가 아닙니다. 원유 공급과 해상 물류가 동시에 흔들리면서 원가 상승, 운송 지연, 재고 불안, 환율 변동이 한꺼번에 기업을 압박하는 복합 충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부서별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구매는 원재료를 걱정하고, 재무는 환율을 걱정하고, 영업은 납기와 가격 전가를 걱정하는데, 결국 이 모든 리스크를 하나의 체계 안에서 관리해야 합니다. 기업 차원에서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조달 리스크를 감이 아니라 숫자로 관리해야 합니다. 특정 항로, 특정 국가, 특정 원재료 의존도를 실시간으로 계량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재고 전략의 철학을 바꿔야 합니다. 과거에는 재고를 줄이는 것이 효율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핵심 원재료와 부품에 대해 전략 재고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경영의 안전판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금융과 운영을 분리해서 봐서는 안 됩니다. 유가 헤지, 운임 계약, 환리스크 관리, 대체 조달선 확보, 고객사와의 가격 연동 계약을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야 합니다. 위기는 더 이상 원가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전체의 대응 역량을 시험하는 문제입니다.”
― 정부는 최고가격제, 각종 가격 인상 제한 등으로 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있지만, 산업계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급격한 충격을 완화하려는 정부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장 가격을 과도하게 직접 통제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격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기업은 증가한 비용을 흡수하지 못하고, 결국 투자와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또 하나는 시장 신호 왜곡입니다. 효율이 높은 기업과 낮은 기업이 같은 규제 틀 안에 묶이면, 경쟁을 통해 자원이 더 생산적인 곳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 지원도 일률적 보전에 머물면 체질 개선보다 의존성을 키울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부가 가격을 직접 억누르기보다 에너지·물류·원자재 충격을 버틸 수 있도록 한시적 세제 지원, 금융 유동성 지원, 물류 병목 해소, 취약 업종 맞춤형 지원에 더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시장을 멈추게 하기보다 시장이 과도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버팀목을 세우는 방식이 더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적 관세 도입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단순한 통상 마찰로 보지 않고, 한국형 성장 모델의 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라고 봅니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수출과 제조 경쟁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가격 경쟁력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큽니다. 통상, 환율, 안보, 제재, 에너지 같은 비경제적 변수까지 읽는 기업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기업 전략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먼저 공급망 다변화를 넘어 시장 포트폴리오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또 원가 우위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기술·브랜드·서비스가 결합된 고부가가치 구조로 이동해야 합니다. 해외 생산거점도 더 이상 비용 절감의 수단이 아니라 관세와 규제, 정치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 자산으로 봐야 합니다.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통상 정책, 환율, 에너지, 제재 가능성까지 함께 점검하는 ‘지정학 경영’을 상시화해야 합니다. 결국 앞으로 강한 기업은 많이 파는 기업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이익 구조를 지켜 내는 기업이라고 봅니다.”
― 현재 정부의 기업 지원 정책과 규제 속도에 대해 학계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학계에서는 대체로 두 가지 평가가 공존합니다. 하나는 밸류업, AI 전환, 첨단산업 육성 등 정책의 큰 방향은 맞다는 평가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장 체감 속도와 정책 간 정합성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기업들은 “방향은 알겠는데, 실행하려고 하면 막히는 것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AI와 첨단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데이터 활용, 입지, 인허가, 노동·환경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동해 기업의 실행 속도를 늦추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세 가지라고 봅니다. 우선 첨단산업 투자 인허가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투자는 타이밍인데, 절차가 길어지면 기회 자체를 놓칩니다. 또 한 가지는 데이터 활용 규제를 보다 합리화해야 합니다. AI 경쟁은 결국 데이터와 실증 환경에서 갈립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산업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합니다. 기업은 규제가 있어도 적응할 수 있지만, 규제가 자주 바뀌거나 해석이 모호하면 투자를 미루게 됩니다. 글로벌 경쟁은 기술력만의 싸움이 아니라 제도를 포함한 국가 운영 시스템의 경쟁이기도 합니다.”
― 복합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기업의 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판을 읽는 통찰력입니다. 이제 경영은 시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 정치, 에너지, 안보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결정을 내리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현장에서는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이 가장 안전해 보이지만 많은 경우 그것이 가장 비싼 판단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신뢰도 있어야 합니다. AI 시대일수록 조직은 결국 리더의 언행일치와 공정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결국 지금 필요한 CEO는 카리스마형 지시자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구조화하고 조직의 역량을 한 방향으로 묶어 내는 설계자라고 생각합니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리더는 답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기보다 조직이 함께 답을 만들 수 있도록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결국 살아남는 기업은 환경을 탓하는 기업이 아니라 환경 변화보다 먼저 자기 체질을 바꾸는 기업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하려 하기보다 자기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고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화려한 구호보다 현금 흐름, 인재, 신뢰, 실행력 같은 기본이 회사를 지킵니다. 결국 위기를 버티는 힘은 전략의 화려함보다 기본의 탄탄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의제 형성하고 방향 제시하는 공론 플랫폼으로”
■ 최 회장의 한국경영학회 비전
AI·산업전환·지배구조 등 의제
현실과 연결하는 점 깊이 고민
“한국경영학회를 단순한 학술 연구의 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영의 미래 의제를 설계하는 공론 플랫폼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지난 3월 한국경영학회 71기 회장으로 취임한 최정일 회장은 “경영학은 현실과 연결될 때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고, 지금처럼 산업 전환이 빠른 시기에는 학회 역시 사회적 의제 형성과 방향 제시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우선으로 인공지능(AI), 산업 전환, 지속 가능 경영, 지배구조, 서비스 혁신 같은 핵심 의제에 대한 융합 논의를 강화할 예정이다. 또 학계와 산업계, 정부와 청년 세대를 연결하는 개방형 플랫폼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최 회장은 “한국경영학회가 미래를 설명하는 곳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계획은 최 회장의 교육 철학과도 연결돼 있다.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인 최 회장은 제자들에게 늘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최 회장은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결국 신뢰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박사학위는 단순히 학문적 성취를 보여 주는 자격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책임과 품격을 함께 요구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지식을 쌓는 것만큼이나 그 지식을 어떤 태도로 다루고 어떤 책임감으로 사회와 연결할 것인가를 늘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AI 시대일수록 사람에게 남는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본질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힘, 그리고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충남대 경영학과 학사, 서울대 경영학 석사,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미국 메리맥대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숭실대 강단에 서고 있다. 앞서 한국서비스경영학회, 한국품질경영학회, 한국IT서비스학회 등 주요 학술 단체의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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