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 타이드, 사상의 썰물과 밀물 - (10) ‘사찰음식’이 던지는 화두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 허기·갈증 달래며 정진

밥상에 감사·식탐에 성찰… 수행하듯 ‘오관게’ 발우공양

 

미식 열풍 탄 사찰음식, 중생들 탐착의 대상 전락 경계

과잉소비 속 절밥의 소박함, 가장 강력한 ‘대안 식문화’

전 세계적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한국의 사찰음식이 국내외 미식 열풍과 함께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체험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식사하는 모습. 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전 세계적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한국의 사찰음식이 국내외 미식 열풍과 함께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체험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식사하는 모습. 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사찰음식이 산사(山寺)의 담장을 넘어 전 세계인의 식탁과 마음을 공략하는 글로벌 문화 아이콘이 됐다. 사찰음식 장인 법송스님은 이달에만 벌써 두 번 유럽 ‘중생’들을 만났다. 독일에선 발우공양의 엄숙한 수행 과정을 체험했고, 스웨덴에선 사찰음식의 ‘절제’가 자신들의 ‘라곰(적당함)’과 맞닿아 있다며 공감했다. 뉴욕타임스는 정관스님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라고 극찬했고, 유럽 MZ 사이에서도 한국의 ‘절밥’이 ‘힙한 비건(채식)’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노리는 사찰음식이 전 지구적 식문화의 대안, 글로벌 미식 트렌드의 중심에 선 것이다. 21세기 한국 불교 최고의 ‘상품’이다.

‘상품’이라고 하니 다소 불경스럽지만,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찰음식에 열광하는 현상의 본질과 이면을 들여다볼수록 그렇다. 또한, 그것이 빚어낸 풍경들은 어떠한가. 사찰음식 명장들이 TV 요리경연에 나와 ‘속세의 맛’과 겨룬다. ‘절밥’ 조리법을 담은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맛집 순회하듯 공양간(사찰의 주방)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이 품격 있는 ‘K푸드’의 인기가 ‘힙불교’ 열풍에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건강에 좋고 신비로운, 그래서 더 궁금한 그 ‘맛’. 거기서 우린 무얼 탐하고 있나.

◇ 수행자의 식단, 식탐을 자극하다= 유명 셰프들과 숨은 고수들이 요리 솜씨를 뽐내는 ‘흑백요리사’ 시즌2에 선재스님이 합류했을 때, 사찰음식은 이미 거대한 미식 열풍에 올라탔다. 앞서 정관스님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로 전 세계에 한국 사찰음식을 알렸는데, 이제 스님이 직접 나선 것이다. 엄격한 미각의 심사위원들이 스님의 비빔밥을 흡입하고 잣국수를 상찬할 때, 사찰음식은 우리의 흥미를 돋우고, 입맛을 다시게 하는 또 하나의 ‘맛있는’ 음식이 됐다. 수행자의 절제된 식단이, 중생의 탐착(貪着) 대상이 된 것. 사찰음식 대가로 알려진 스님들이 유명해지고, 급기야 이들의 실력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스님이 요리사로, 사찰이 맛집으로 소비되는 형국이다.

이 기이한 현상은 최근 불교계 안팎에서 여러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포교라는 명분은, 방편의 세속화와 상업화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공만식 박사를 비롯해 법송스님, 한수진 동국대 교수 등 국내 주요 불교학자들은 ‘불교평론’ 등을 통해 발표한 논문과 글에서 사찰음식의 미식화와 상업화에 대해 우려한다. 이들은 “오늘날 대중이 사찰음식에 열광하는 지점이 ‘수행성’이 아니라 ‘미식적 가치’에 있다”고 분석한다. 사찰음식이 미슐랭 가이드에 오르고, 고급 한식으로 소비되는 현상은 ‘포교의 성공’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불교적 가치가 세속의 미식주의에 굴복한 결과”라는 것이다. 수행의 도구여야 할 음식이 자본주의적 등급제의 대상이 되는 순간, 사찰음식은 세속의 탐욕을 정당화해 주는 사치재로 전락한다는 지적이다.

진관사의 사찰음식 차림. 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진관사의 사찰음식 차림. 불교문화사업단 제공

◇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 것’ 인가= 사찰음식 대중화의 함정을 지적한 책 ‘사찰음식은 없다’(인문공간)에서 정산스님은 사찰음식의 철학적 기준을 원효대사가 쓴 ‘발심수행장’에서 발견한다. “배고프면 나무 열매를 먹어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목이 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힌다/좋은 음식을 먹고 애지중지 보살피더라도/이 몸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정산스님은 이 대목에서 “수행자가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명징하게 드러난다”면서 “사찰음식의 가장 기본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소한의 것만으로 허기를 달래고,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갈증만을 가라앉힌 후, 수행에 정진한다. 즉, 사찰음식에 대한 높은 관심은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지’에 대한, 현대인들의 근원적 질문으로 치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찰음식 대가로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정관스님과 선재스님도 줄곧 이러한 본질을 강조해왔다. 사찰음식은 불교의 수행이자 의식, 그리고 마음과 태도라는 것이다. 정관스님은 자신을 향한 ‘셰프’라는 찬사를 거절하고 “나는 음식을 통해 부처의 법을 전하는 수행자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선재스님도 “사찰음식은 약석(藥石)이다. 입이 아닌 마음으로 먹는 것”이라며 레시피에 매몰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식에 대한 관심이 열풍을 넘어 광풍의 지경이 된 요즘, 과연 대중은 ‘스님의 레시피’가 아닌, ‘부처의 지혜’를 구하고 있을까. 주요 서점 요리 서가에 꽂힌 두 스님의 책들은 의도와 상관없이, 대중의 욕구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 진정한 대안 식문화… 사라진 ‘과정’을 회복하라= “음식을 취할 때 성찰하는 마음가짐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식사일 뿐, 불교 특유의 ‘공양’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이혜숙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인류는 우리에게 유용한 음식을 제공하는 자연이 받을 피해를 몰각(沒覺)하고 음식의 맛에만 매료되어서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곤 한다.”(한수진 동국대 교수)

불교 학자들은 수행 현장에서의 ‘과정의 생략’을 사찰 음식을 세속의 ‘식도락’으로 변질시킨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그러면서 ‘과정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은 식재료가 밥상에 오기까지의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 음식을 대하며 자신의 탐욕을 살피는 ‘성찰’, 음식을 깨달음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수행적 태도’다. 정산스님도 ‘사찰음식은 없다’에서 ‘오관게(五觀偈)’를 외우며 시작하는 스님들의 식사, 즉 ‘발우공양’이 사라진 공양간을 “한식뷔페로 불러도 될 지경”이라 꼬집고, “지금 우리가 말하는 사찰음식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한국불교의 사찰에는 사찰음식이 없다”고까지 비판의 강도를 높인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바로 이 ‘오관게’다. 이것이 사찰음식을 미식 열풍에서 건지고, 현대 미식주의의 대항마로서 권위를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논지다. 최근 음식 특집을 기획한 ‘불교평론’에서도 오관게를 식사 전 읊는 ‘형식적 문구’가 아니라 사찰음식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최후의 보루로 규정했다. 또한, 오관게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에 음식을 대하는 대중과 미디어는 물론, 이를 포교에 활용하는 불교계 모두의 동참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사찰 음식과 고급 비건 요리를 구분 짓고, 수행 도구의 소비재 전락을 막고, 종교의 상업화에 대한 저항선이 된다는 것. 그때, 사찰음식은 진정한 의미의 ‘대안 식문화’로서 자격을 얻는다. 학자들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로 몸살을 앓는 현대 문명에서 사찰음식의 절제와 소박함은 가장 강력한 대안적 식문화가 될 수 있다”면서 “사찰음식의 정신이 현대적인 윤리 소비 담론과 결합하면, 지구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미래지향적 문화 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제언한다.

706자에 담긴 ‘용맹정진’ 지침서

 

■ 원효대사 발심수행장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617∼686)가 저술한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은 시대를 초월해 수행자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설파한 불교의 고전이자 수행의 지침서다. 전체 내용이 706자밖에 되지 않는 사언절구의 짧은 글이지만, 원효대사는 이를 통해 수행의 본질이 겉치레나 감각적 즐거움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부처님께서 적멸궁을 아름답게 꾸미신 것은/오랜 세월 욕심을 끊고 수행하신 까닭이요/수많은 중생이 불타는 집에서 고통받는 것은/끝없는 세상 동안 탐욕을 버리지 못한 까닭이다/막는 이가 없는데도 천당 가는 사람이 적은 까닭은/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 번뇌에 가득 차/스스로를 재물로 삼기 때문이고….’ 책은 의식주, 특히 먹는 것에 탐욕을 끊어야 하는 당위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잠과 게으름은 깨달음의 적이라고 꾸짖는다. ‘망가진 수레는 굴러갈 수 없듯 사람도 늙으면/수행할 수 없으니/누우면 게으름만 생기고 앉아 있어도/어지러운 생각만 일어난다….’ 백미는 시간의 덧없음에 대한 경책이다. 원효는 우리가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어찌 급하고도 급하지 않겠는가”라며, 지금 이 순간 ‘발심(發心·마음을 냄)’하여 ‘용맹정진(勇猛精進·불교 수행의 가장 치열한 상태)’하라고 독려한다.

■ 참고

오관게(五觀偈)

음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성찰을 담은 게송(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시)으로, 식재료에 깃든 수고로움을 헤아리며 하심(下心·마음을 내려놓다)을 닦게 한다. 맛의 즐거움을 제어하고, 먹는 행위도 도를 이루기 위한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약석(藥石)

원래 병을 고치는 약과 돌침을 뜻하지만, 사찰에선 수행을 위해 몸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음식을 일컫는다. 음식을 맛이나 배부름을 탐하는 미식이 아니라, 몸이라는 수레를 굴려 깨달음에 이르도록 돕는 약물이자 치료로서 여긴다는 의미다.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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