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산업부 차장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다시 ‘기업 유치’ 현수막으로 펄럭이고 있다. 대기업 유치, 일자리 창출 등 표심을 자극하는 달콤한 구호가 넘쳐난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이 포퓰리즘적 구호 앞에서 산업계는 씁쓸함을 넘어 공포마저 느낀다. 기업의 경영 효율성이나 글로벌 경쟁력은 안중에 없는 ‘표심 맞춤형’ 헛공약과 무리한 혜택 약속이, 결국 기업에 심각한 ‘정치 리스크’로 돌아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겪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위스콘신주의 ‘폭스콘 유치’ 스캔들이다. 2017년 당시 공화당 주지사는 선거용으로 대만 폭스콘 공장을 유치하며 1만3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언했고, 그 대가로 30억 달러(약 4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세금 혜택을 약속했다. 문제는 2018년 선거에서 민주당 주지사에 패하며 상황이 급변한 것. 새 주지사는 재협상을 통해 폭스콘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축소했고 폭스콘은 단지 규모를 줄였다. 대규모 제조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던 곳은 부지 매입과 인프라 조성에 쏟아부은 막대한 매몰 비용만 떠안은 채 썰렁하게 남아있는 상태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 정치권의 ‘기업 흔들기’는 한술 더 뜬다. 최근 전북 지역의 일부 도지사 후보들은 이미 부지 지정과 보상 절차가 진행 중인 ‘용인 삼성전자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통째로 새만금으로 이전하겠다는 황당한 공약을 내걸고 특별위원회까지 꾸렸다. 반도체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1분 1초가 아쉬운 기업을 뒤흔드는 격이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HMM 본사 부산 이전’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사회가 이전을 위한 정관 변경안을 의결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HMM 노조는 이전을 반대하며 총파업 수순에 돌입했다. 선거판의 이해관계가 멀쩡한 기업에 노사 갈등과 업무 효율성 저하라는 짐만 안겨준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부지를 확정해도 끝이 아니다. 각종 이권 다툼에 공사 진행이 지연되는 경우다. 2019년 첫 삽을 예고했던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대표적이다. 이웃 지자체와의 용수 갈등, 송전망 구축을 둘러싼 지역 이기주의, 거미줄 같은 인허가에 묶여 본격적인 부지 공사에 착수하기까지 무려 4년이라는 골든타임을 허비해야만 했다. 현재 뒤늦게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지만, 5년 이상 걸릴 공장을 불과 20개월 만에 가동해 낸 일본 구마모토의 TSMC 속도전과 비교하면 뼈아픈 지각 출발이다. TSMC 1공장이 보여준 ‘구마모토의 기적’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원팀이 돼 산림 벌채부터 지하수 확보, 교통망 구축 등 인프라 난제를 즉각 해결하고, 인허가 규제를 단숨에 철폐한 결과다. 안정적인 송전망과 산업용수, 킬러 규제를 치워주는 ‘패스트트랙’이야말로 첨단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진짜 인센티브다.

표를 얻기 위해 당장 쥐여주는 선심성 혜택이나, 남의 지역 산단을 빼앗아 오겠다는 억지 주장은 부작용만 가져온다. 기업이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둥지를 트는 곳은 묵묵히 전력선을 깔아주고 규제의 모래주머니를 치워주는 지자체다. 선거용 헛공약이 아닌, 기업의 진짜 니즈를 꿰뚫는 ‘인프라와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

이용권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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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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