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프로코피예프 ‘피터와 늑대’

 

탐욕스러운 늑대 만난 피터

새와 함께 밧줄로 생포한뒤

동물원으로 데려가 살게 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 메시지

악기로 표현한 동물 생동감

늑구가 돌아왔다. 대전 오월드를 탈출했다가 열흘 만에 생포된 늑대 한 마리가 사회에 미친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도심 한가운데 늑대가 돌아다닌다는 사실. 이는 우리네 평온한 일상에 기묘한 이질감과 긴장감을 주기 충분했다.

문명사에서 늑대는 공포, 그리고 인류 본성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로마의 유명한 격언은 이를 선명하게 요약한다. 사람은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물어뜯는 잔혹한 들짐승과 같다는 명제. 이는 맹수의 속성을 요약한 경구이지만, 인간 본연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특성을 늑대에게 덧씌운 것이다.

동화나 민담에서도 이런 이미지는 반복된다. 소녀가 늑대와 조우하는 ‘빨간 망토’, 아기 돼지 삼 형제가 움막집·나무집·벽돌집을 지으며 포식자에게 맞서는 이야기에서도 늑대는 언제나 탐욕스럽고 교활한 적대자다.

이와 비슷한 러시아 설화를 기반으로, 1936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위 사진)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향적 동화 ‘피터와 늑대’를 작곡했다. 당시 모스크바 중앙 아동극장(현 러시아 아카데믹 청소년 극장) 감독 나탈리야 사츠의 의뢰를 받아 완성된 곡으로, 프로코피예프는 최종 대본까지 손수 썼다. 낭독자와 오케스트라로 구성되며, 지휘자가 직접 해설을 맡거나 별도의 내레이터가 등장해 구현 동화같이 낭독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에게는 음악과 서사가 만나는 유쾌한 경험이며, 어른에게는 동심 가득한 감각적 만찬이다.

1911년 제시 윌콕스 스미스가 그린 ‘빨간 망토’의 삽화. 동화나 민담에서 늑대는 대부분 탐욕스럽고 교활한 포식자, 적대자로 형상화된다.
1911년 제시 윌콕스 스미스가 그린 ‘빨간 망토’의 삽화. 동화나 민담에서 늑대는 대부분 탐욕스럽고 교활한 포식자, 적대자로 형상화된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소년 피터는 할아버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원 너머로 나갔다가 늑대와 마주친다. 늑대는 새와 오리와 고양이를 위협하다 끝내 오리를 삼켜 버리고, 용감한 아이는 새의 도움을 받아 밧줄로 늑대의 꼬리를 묶어 사로잡는다. 피터는 뒤늦게 달려온 사냥꾼들과 함께 늑대를 동물원으로 인도하며 당당하게 승리의 행진을 벌인다.

작품의 교육적 목표는 뚜렷하다. 오케스트라 각 악기의 음색이나 특성을 각 동물과 연계하는 것. 피터는 현악기, 할아버지는 바순, 새는 플루트, 오리는 오보에, 고양이는 클라리넷, 사냥꾼들은 타악기로 총성을 묘사한다. 문제의 늑대는 3대의 호른이 담당하는데, 장중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위험스러운 화음은 의뭉스럽고도 위협적인 늑대의 성격을 암시한다.

작곡가는 악기의 음색뿐만 아니라 맞춤 선율로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 바순의 느릿한 리듬감은 투덜거리는 노인을 연상하게 하고, 플루트는 기교적이고 빠른 패시지를 통해 작은 새의 노랫소리와 날갯짓을 형상화한다. 현악기의 경쾌한 멜로디로 표현되는 소년 피터의 천진난만함과 늑대의 육중한 테마는 서로 대조되지만, 극의 긴장감을 완성하는 요소다. 여기서 피터는 안온한 집을 넘어 바깥 세계로 간다. 담장을 넘어 미지의 공간으로 나간 피터의 행동은 단순한 모험심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너머, 늑대라는 위협과 대면하겠다는 의지다.

주목할 점은 피터가 늑대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년은 늑대를 총으로 쏘려는 사냥꾼들을 만류하며 동물원으로 데려가자고 제안한다. 생포한 늑대와 함께 걷는 피터 곁으로 새와 고양이가 합류해 흡사 동물의 사육제 같은 행렬이 펼쳐지는 결말. 프로코피예프는 늑대를 처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용기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그렸다.

2018년 오월드를 빠져나온 퓨마가 사살된 전력이 있기에 이번 늑구 사건은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늑구의 생환 소식에 기뻐했던 이유다. 늑대와 함께 환하게 웃으며 동물원으로 행진하던 피터처럼. 늑구의 탈출 소동과 프로코피예프 음악 동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다. 늑대로 상징되는 자연과 야생, 인간은 대립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관계라는 것.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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