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54명이 ‘미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22일 강경화 주미 대사에게 보낸 것은 외교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의원들은 ‘애플·구글·메타 등 첨단기술 기업이 한국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면서 쿠팡에 대해서는 ‘박해(persecution)’ 표현까지 동원했다. 미 의원들이 한국 외교 당국과 소통하며 현안을 다뤄온 관례를 깨고 공개적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곳곳에서 비정상 양상이 표출하는 한미관계의 민낯을 상징하는 심각한 일이다. 주미 대사관의 대(對)의회 활동의 한심한 수준도 짐작할 만하다.

집단 서명 54명은 공화당의 최대 정책 코커스인 공화당연구위원회(RSC) 소속이다. 이들은 서한에서 ‘한국의 보호무역주의적 입법 조치의 증가 추세를 우려한다’고 썼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을 보호주의적 발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쿠팡에 대한 사업면허 취소 위협, 무차별적 압수수색, 징벌적 과징금, 전례 없는 세무조사 등 압박을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불이익 금지를 명시한 무역 관련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를 무시하는 행위’라며 ‘용납할 수 없다’고도 했다.

서한은 강제력이 없는 정치적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과할 일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시위 성격도 있다. 과거 대사들과 비교할 때, 강 대사와 대사관의 정무 역량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서한은 미 정치권에 대한 쿠팡의 로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쿠팡 문제가 한미 관계의 본류로 보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내정간섭, 사법주권 침해라는 식으로 정면 대응할 경우 소탐대실 우려가 크다. 미 의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동맹 관련 돌발적 결정을 막아주는 방파제이기도 하다. 이번 공개 서한 파문이 발생하게 된 경위와 책임 등을 정밀하게 따져 비공식 외교, 막후 대화 등을 제대로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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