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
초록이 점령하고 붉은 꽃잎 시들어
늦봄서 초여름 넘어가는 시절 묘사
요즘에는 꽃 피는 차례가 뒤죽박죽
여름 빨라져 계절 표현도 무색해져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가버린 계절
백발 벗들 모여 봄 보내는 술자리
다산이 김매순(金邁淳)에게 보낸 편지는 ‘동쪽 지방으로 한 열흘 유람하고 돌아왔더니, 어느새 초록은 살지고 붉은 꽃은 수척해져서 짙은 그늘이 바다와 같습니다’(東游十日而還 已綠肥紅瘦 繁陰如海)로 시작된다. 추사가 장인식(張寅植)에게 보낸 편지에는 ‘한번은 비 오고 한번은 바람 불다가 어느새 봄이 돌아감을 재촉하여, 초록이 살지고 붉은 꽃이 파리해진 것을 느끼니, 먼 데 향한 그리움을 고물고물 가라앉히지 못하겠습니다’(一雨一風 冉冉催春歸 已覺綠肥紅瘦 遠緖搖搖 不自定)라고 했다. 심희순(沈熙淳)에게 쓴 추사의 편지에도 ‘초록은 살지고 붉은빛은 시들어, 봄은 이미 여름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강물 빛을 보노라니 마음이 아슴아슴합니다’(綠肥紅瘦 春已夏矣 日對江光 所懷渺渺)라고 하였다. 보고 싶고 그립다는 얘기를 다들 이렇게 썼다.
세 편지의 모두에 등장하는 ‘녹비홍수(綠肥紅瘦)’란 표현이 눈길을 끈다. 초록이 점차 주변을 점령해 들어오는 사이, 곱던 꽃잎들은 바람에 불려가고 비에 젖어 볼품없이 되었다. 그래서 이 말이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절을 나타내는 관용 표현인 줄 알았다.
예전 편지는 흔히 계절어로 시작된다. 정학연(丁學淵)의 편지는 이렇다. ‘골목길의 버들이 어느새 아황색(鵝黃色)을 띠어 유람의 흥취가 물씬합니다. 송기떡과 꽃지짐, 청포묵과 미나리 나물이 딱 맞는 계절 음식이올시다.’( 衚衕楊柳 已作鵝黃色 使幽興勃然 餑餠花糕菉乳菫菜 政是節物) 아황색이라니, 새끼 거위의 연둣빛에 가까운 노란색을 말한다. 봄이 더 가기 전에 진달래꽃 화전에 미나리 무침과 함께 술이나 한잔하자는 초대다.
서거정은 ‘봄날(春日)’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황금빛은 버들에 들고, 옥은 매화 떠나가니, 작은 연못 새 물이 이끼보다 푸르다. 봄 시름과 봄의 흥취 누가 깊고 얕은고. 제비는 오지 않고 꽃은 아직 안 피었네.’(金入垂楊玉謝梅 小池新水碧於苔 春愁春興誰深淺 燕子不來花未開) 아슴아슴 이른봄의 연둣빛 풍경을 그렸다. 근심도 아니고 설렘도 스민 야릇한 느낌, 겨우내 우중충하던 못물은 어느새 남실대는 새 물로 온통 파랗다. 마음에 사운대는 정서가 일어난다. 위 정학연의 편지에서 며칠 더 지난 시점의 감각을 담았다.
이덕무가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는 ‘배꽃은 하마 지고, 감잎이 막 돋았소. 작별한 지 겨우 두 달인데, 아득하기가 지난해 같구려’(梨花已落 柿葉初敷 別才二朔 杳如昔歲)라고 했다. 감잎이 첫 잎새를 내밀 시점은 분명하게 감지되는 계절적 표지였을 것이다. 표현들이 운치가 있다. 버들에 물이 오르면서 산수유와 매화가 길을 열고, 개나리·진달래가 피어난 뒤 벚꽃과 목련의 때가 온다. 그제야 철쭉과 라일락으로 눈과 코가 호사를 부린다.
그러던 것이 꽃 피는 차례가 한꺼번에 뒤죽박죽 어수선하게 바뀐 지가 꽤 되었다. 요즘 피는 꽃은 도무지 순서를 모르겠다. 중구난방 마구잡이로 피었다가 차례 없이 진다. 진달래를 못 봤는데 목련이 먼저 피고, 갑자기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스쳐 간다. 개화의 차례가 엉망이 되고 봄이 여름으로 이동하는 시점도 확 앞당겨져서 계절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도대체 물색없게 되었다. 아직 꽃샘추위가 한두 번쯤 더 오겠지 싶었는데 갑자기 점령군처럼 쳐들어온 여름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노산 이은상은 ‘개나리’에서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지 못하고’라고 노래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은 언제고,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던 것은 ‘어느 맘’ 때인가?
계절의 느낌도 달라지고 이런 정겨운 마음들도 같이 사라져 간다. 이런 편지글이 쓸모없게 된 세태가 퍽 서운하다.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말하고, 찔러 얘기하는 대신 빙 돌려 말하는 것이 문화다. 어찌 보면 문화는 전달과 접수의 과정에 우회의 경로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알아먹기 쉽게 떠먹여 주지 않고, 그 속에 여백을 만들어 정서로 적신다. 그런 이야기가 많아야 문화에 두께가 앉고 깊이가 생긴다.
열흘 전 아침에 연구실로 걸어오는데, 간밤 비에 진 벚꽃이 아파트에 주차해둔 차와 도로 위를 온통 하얗게 덮었다. 사진으로 찍어 ‘손은 지는 꽃잎 잡지 못하고’를 태그로 달아 몇 벗에게 보냈다. 그중 한 벗이 ‘어제 청춘이 오늘 백발이라, 벗님네들 모여 앉아 한 잔 더 먹고 놀아보세’라고 화답해 왔길래, 예정에 없던 전춘(餞春·봄을 전별함)의 술자리를 가져 또 한 번의 봄을 보내는 의식을 치렀다.
성해응(成海應·1760∼1839)이 쓴 ‘전춘일에 짓다’(餞春日作)라는 시의 첫 네 구절은 이렇다. ‘고운 빛 바쁘기가 구르는 바퀴 같아, 남은 꽃 냇가에서 구슬피 바라보네. 초록 그늘 아직 옅어 비가 적음 알겠고, 꾀꼬리 첫 울음에 봄이 떠남 깨닫누나.’(麗景忩忩 似轉輪, 餘花悵望小溪濱 綠陰猶淺知慳雨 黃鳥初鳴悟餞春)
봄날은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휙 가 버렸다. 꾀꼬리가 시끄럽고, 직박구리의 즉즉 끌던 목소리가 고운 목소리로 풀려 간다. 그사이 남은 꽃은 살진 초록 그늘에 묻히고 없다. 잠깐 어 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여름 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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