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김영삼 정부 때 탈북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그는 망명 당시 서신에서 “남한 내에 고정간첩 5만 명이 암약하고 있으며 특히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 있다”고 했다. 또, “그쪽(한국) 권력 깊숙한 곳에 이쪽(북한) 사람이 있다. 우연히 김정일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더니 그날 아침 여권 핵심 기관의 회의 내용과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고 했다. 이 발언으로 ‘간첩 5만 명’ 논란이 불붙었다.
이후 노무현 정권 당시 미국 측이 한국에 제공한 대북 정보가 다음 날이면 김정일 책상 위에 올라가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며 정보 제공을 중단한 바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간첩 조직인 ‘일심회’ 수사 당시 국가정보원이 청와대 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는 상황에 권력 핵심부에서 이를 막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한미는 동맹이긴 하지만 정보에 있어서는 냉정하다. 1970년대부터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도 전직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에 따르면 주미 한국 대사관 등에 대한 도청을 했다고 한다. 이와는 별개로 한미는 대북 정보에 있어서는 협조가 필수적이다. 미국은 첨단 장비를 통한 테킨트(TECHINT·기술정보), 북한 내부 통신을 감청해 얻는 시긴트(SIGINT·신호정보)는 월등하다.
반면, ‘살아 있는 정보’인 휴민트(HUMINT)는 우리가 비교우위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확산하던 2008년 9월 정부 고위 인사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양치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라는 첩보를 흘렸다. 옆에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김정일의 동향이 공개된 것을 두고 고급 정보원을 숙청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역으로 북한의 최고 기밀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고급 휴민트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된 셈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지역 고농축 우라늄 발언’으로 한미 간 정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제공한 정보를 국회에서 공개했다는 것인데,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재명 정부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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