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원유 수급 위기에 정부가 지속 추진하고 있는 석유 최고가격제의 ‘출구 전략’이 시급하다. 서민과 운송업계 등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에도 수조 원의 재원을 마련했지만, 최고가격제에 따른 석유 제품 및 제반 물가에 대한 착시가 불러올 혼란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4일부터 석유 최고가격제가 4차 시행에 접어든다. 앞서 지난 10일부터 적용된 3차 최고가격은 미국과 이란 간의 휴전 협상 분위기 속에 제도 시행 처음으로 2차 최고가격 수준으로 동결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협상 교착이 지속되고 글로벌 원유 공급망의 ‘초크포인트’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석유 최고가격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최고가격을 제한하는 대응 방식이 실제 글로벌 시세보다 국내 석유 제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도록 하는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 21일 기준으로 이번 전쟁이 발발한 2월 28일 대비 18.4% 상승한 ℓ당 2003원대를 기록 중이다. 같은 기간 경유는 25.0% 상승한 ℓ당 1996원대에 올라섰다.
각 국가나 지역별로 석유 제품에 대한 가격 책정 기준이나 도입 원가 및 유통 구조가 다른 만큼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국내 석유 제품 가격은 타국에 비해 상승 폭이 작은 편이다. 같은 기준으로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은 전쟁 직전 대비 35.6% 상승했고 경유는 47.1% 올랐다.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가격(MOPS)은 이 기간 휘발유는 48.0%, 경유는 66.9% 상승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정유사에 대한 보조금으로 전쟁 이전부터 석유 제품 가격을 낮춰 온 데다 전쟁 이후에는 보조금 규모를 늘려서 휘발유와 경유 가격 상승률을 그나마 7.28%, 9.40% 수준으로 막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석유 제품 가격 상승 폭은 국민의 위기의식과 에너지 절약 인식 제고를 저해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였던 2022년 7월 20일 이후 약 3년 9개월 만에 국내 휘발유 가격이 ℓ당 2000원대에 도달했지만, 최고가격제가 아니었다면 도달 시기가 훨씬 빨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 제도가 전쟁에 따른 불가피한 물가 인상을 지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고가격제의 또 다른 불안한 미래는 정유사에 대한 정산의 시기다. 정부는 이번 제도 시행으로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액을 분기별로 사후 정산해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한 추경안에는 손실보전을 위한 4조2000억 원 등 총 5조 원의 고유가 대응 예비비가 편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업계가 산출한 손실액을 정부가 정산위원회를 통해 곧이곧대로 보전해 주지는 않을 것이고 법정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정유업계에서도 5조 원으로는 업계의 손실을 충분히 보전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고유가 부담을 덜어준다는 정부의 선의에는 착시나 오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수요·공급의 가격 결정 구조에서 벗어난 현재의 시장에는 착시보다는 현실에 대한 직시가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