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8) ‘새로운 미술史’ 꿈꾸는 김을 작가

 

‘갤럭시’, 드로잉 1350점 별처럼 배치

판화·사진·조각까지 포함 ‘전복’ 시도

 

그림속 앞뒤 공간을 창문으로 연결해서

2차원 회화·3차원 조각이란 구분 해체

 

스튜디오 ‘현실공간’서 가상작품 제작

허구 - 리얼리티 구분 흐리는 오브제 연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소장한 김을 작가의 ‘갤럭시(Galaxy)’. 2016년 제작된 작품은 가로 30m에 달하는 검은 벽면에 1350점의 드로잉을 설치했다.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처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소장한 김을 작가의 ‘갤럭시(Galaxy)’. 2016년 제작된 작품은 가로 30m에 달하는 검은 벽면에 1350점의 드로잉을 설치했다.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처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 김을의 ‘드로잉을 넘어서’

“드로잉은 붓과 연필이 아닌 망치로 하는 것.”

김을은 기존 ‘미술사를 넘어서’ 새로운 미술을 꿈꾼다. 그는 새로운 미술의 탄생을 위해 드로잉과 회화 그리고 조각 등 기존 미술 개념을 해체한다. 여러분, 드로잉이 무엇인가? 뭬야? 너무 뻔한 질문이라고요? 미안타! 여러분이 잘 알 듯이 드로잉은 일반적으로 채색을 쓰지 않고 주로 선으로 그리는 회화표현을 뜻한다. 그런데 김을의 드로잉은 전통적인 개념의 드로잉을 넘어선다.

머시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좋다! 여러분을 위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언급해 보겠다. 김을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올해의 작가상’에 1350점의 드로잉으로 구성한 ‘갤럭시(Galaxy)’와 2층 건물을 건축한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twilight zone studio)’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그의 ‘갤럭시’는 30m 길이에 달하는 검은 벽면에 1350점의 드로잉을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Milky Way)처럼 연출한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그의 1000여 점이 넘는 드로잉을 본다면 기존 드로잉뿐만 아니라 회화와 판화 그리고 사진과 조각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의 드로잉은 전통적인 미술 구분에 딴지 걸고, 훼방 놓고, 더럽히고, 전복한다. 그는 드로잉을 “형식이 아니라 자유롭게 표현하는 태도”라면서 드로잉을 “붓과 연필이 아닌 망치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드로잉은 니체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면 ‘망치로 미술하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17년 작 ‘무제(untitled)’는 일종의 ‘가구-회화’다. 두 개의 수납공간이 있는 가구에 그림을 접목했다. 세로 수납공간에는 커튼이, 가로 수납공간에는 집과 자동차가 있는 도시풍경을 담았다.
2017년 작 ‘무제(untitled)’는 일종의 ‘가구-회화’다. 두 개의 수납공간이 있는 가구에 그림을 접목했다. 세로 수납공간에는 커튼이, 가로 수납공간에는 집과 자동차가 있는 도시풍경을 담았다.
하늘이 그려진 캔버스에 작은 ‘미니어처 창문’을 설치한 ‘비욘드 더 페인팅 17-14(Beyond the painting 17-14)’. 작가는 이 검은 창문을 통해 관객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의도했다.
하늘이 그려진 캔버스에 작은 ‘미니어처 창문’을 설치한 ‘비욘드 더 페인팅 17-14(Beyond the painting 17-14)’. 작가는 이 검은 창문을 통해 관객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의도했다.

# 김을의 ‘회화를 넘어서’

“이것은 회화인가? 조각인가?”

여러분, 회화가 무엇인가? 그렇다! 여러분이 잘 알 듯이 회화는 2차원의 평면(한지나 캔버스)에 먹이나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뜻한다. 그런데 김을의 ‘비욘드 더 페인팅(Beyond the Painting)’은 10㎝의 두께를 지닌 캔버스라는 것 그리고 오브제를 접목한 것이란 점에서, 그것은 회화이면서 조각이고 동시에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전통적인 미술의 장르인 2차원적 회화·3차원적 조각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이 아닌가?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저의 ‘비욘드 더 페인팅’ 시리즈는 물리적 구조로서 회화표면의 뒤에 검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이 앞뒤의 두 공간은 ‘창문’이라는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표면의 무의미한 공간을 지나 그 너머의 어두운 침묵 속 상상의 공간 속에서 표면에서 생략된 진실의 세계를 유추, 상상해 보는 사색적이고 자유로운 미적 세계를 탐색하게 됩니다. 이때, 감상자는 수동태에서 벗어나 능동적 자세로 그림을 접하게 됩니다.”

김을의 ‘비욘드 더 페인팅’ 시리즈는 10㎝ 두께의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브제로 연출된다는 점에서, 그것이 회화인지 아니면 조각인지 모호하게 보인다. 말하자면 그의 ‘비욘드 더 페인팅’ 시리즈는 현실과 가상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 그는 기존 미술의 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는 기존의 ‘미술’을 탈영토화하고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낸다.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의 내부. 작가의 여러 드로잉을 비롯해 ‘비욘드 더 페인팅’, 그리고 직접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로 연출돼 있다.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의 내부. 작가의 여러 드로잉을 비롯해 ‘비욘드 더 페인팅’, 그리고 직접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로 연출돼 있다.

# 김을의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

“지금까지 이런 작품은 없었다. 이것은 건축인가? 미술인가?”

이번에는 ‘올해의 작가상’에 선보인 2층 건물로 건축한 김을의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를 보도록 하자. 네?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가 무슨 뜻이냐고요? ‘트와일라잇’은 문자 그대로 ‘2개(twi) 빛(light)’을 뜻한다. ‘트와일라잇’은 일출 전과 일몰 전후에 하늘이 희미하게 밝은 상태를 뜻하는 박명이나 황혼 혹은 서광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트와일라잇’이 형용사로 쓰일 경우 ‘불가사의한’ ‘비밀스러운’ 혹은 ‘중간지대의’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트와일라잇 존’은 ‘미지의 세계’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김을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나의 스튜디오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 내부의 공기는 사뭇 비현실적이다. 이는 작가 자신도 역시 현실에 존재하지만, 현실에만 눈을 고정하지 않고 현실 너머의 세계를 동시에 응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공간은 현실과 비현실,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 등이 공존하고 있는 특수한 세계일 수밖에 없다. 나의 스튜디오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 즉 중간지대라 할 수 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의 외관. 작가의 실제 작업실을 모델로 2층 건물을 건축했다. 관객이 직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다음 달 몽골 사막에서도 선보인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의 외관. 작가의 실제 작업실을 모델로 2층 건물을 건축했다. 관객이 직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다음 달 몽골 사막에서도 선보인다.

김을의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는 관객의 출입이 가능하다. 스튜디오 1층과 2층 내부에는 김을의 ‘드로잉’뿐만 아니라 ‘비욘드 더 페인팅’ 그리고 작품을 위해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로 연출되어 있다. 그는 ‘현실 공간’에서 ‘가상작품’을 제작한다. 따라서 그의 스튜디오는 현실과 가상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그는 리얼리티를 허구 속으로 스며들게 하고, 허구가 리얼리티 속에 정착되게 다양한 작품들을 연출해 놓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는 건축이면서 동시에 미술인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러 예술 장르들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도를 가진 그의 작품을 일종의 ‘종합예술(mixed material arts)’로 부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의 ‘종합예술’은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을은 ‘미술사를 넘어서’에서 “우리는 미술사를 존중하되 한편으론 미술사를 무시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면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진술을 한다.

“미술에 대한 사적 이해나 편견 없이 동시대를 독창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여 동시대의 미적 가치 실현을 위한 나름대로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미술사는 결코 최상의 흐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 바람직한 흐름이 있었다면 동시대 미술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을까? 너무 궁금하다.”

류병학 미술평론가

■ 김을 작가는?

김을(72·사진) 작가는 원광대 금속공예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94년 금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갤러리사비나, 갤러리 도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OCI미술관 등 국내 미술관뿐만 아니라 독일 쾰른의 쿤스트라움(KUNSTRAUME),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베이스 프로젝트(Le Basse Projects)와 앤드루셔 갤러리(Andrewshire Gallery) 그리고 백아트(Baik Art), 중국 베이징의 팍스 아트 아시아(Pax Arts Asia), 일본 도쿄 미술관 등 해외 미술관에도 다수 초대됐다.

특정 주제나 소재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작업 세계와 성실한 예술적 태도를 구축해 온 김 작가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고, 2018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최근 김 작가의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이에 따라, 내달 31일부터 7월 4일까지 약 한 달간 몽골 울란바타르 남쪽 사막지대에 ‘트와일라잇 존 스튜디오’가 세워진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될 이 건축물 안에는 작가의 드로잉과 회화 등 다양한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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